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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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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열정 어설픈 열정 모교인 영원국민학교에서 처음으로 6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6학년 담임은 내가 바라던 터라 학년 초부터 학생 교육은 물론 학급 경영을 의욕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맡겨준 업무도 군말 없이 척척 처리하는 걸 보고, 한 선배교사는 나에게 아이디어뱅크라는 별명도 붙여주었습..
1969년, 초임학교에서의 수업 모습(사진) 교단 첫해인 1968년, 정읍신풍국민학교의 5학년 1반 수업 모습입니다. 교단 둘째 해인 1969년, 정읍신풍국민등학교의 6학년 1반 수업 모습입니다.
모교의 교단에 서다. 모교의 교단에 서다. 국민학교를 졸업한지 열 한 해, 선생이 된지 세 해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하던 영원초등학교에 선생이 되어 되돌아오던 날, 나는 흥분과 감회로 만감이 교차되었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교실이 있던 자리에는 새 교실이 들어서 있었으나, 드넓은 운동장은 옛 그대로였습니다..
아찔한 운동회 아찔한 운동회 예전에 시골에서의 국민학교 운동회는 학교의 가장 큰 행사임은 물론 지역의 큰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운동회를 위한 연습도 장장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9월초에 시작된 연습은 운동회가 열리는 10월초까지 이어졌습니다. 매일 오후는 거의 연습으로 채워졌..
막걸리 문화에 젖어 막걸리 문화에 젖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자마자, 내가 처음 익힌 것 중의 하나는 막걸리라는 술을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극히 비생산적인 소비문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 셈입니다. 교직에 들어서 처음 근무한 학교에는 주변 마을에서 하숙을 하거나 자취를 하는 소위 타지 선생님..
들꽃같은 아이들의 잔칫날 어설픈 지휘가 빛났던 이유 2년 전에 근무했던 자그마한 시골 초등학교의 학예 발표회가 열리는 날, 특별 초대를 받고 교문에 들어섰습니다. 이 학교는 40명 남짓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의 소규모 학교로 내가 평교사로서의 마지막 2년 동안을 몸담았던 학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
불안한 동행 불안한 동행 외환위기의 후유증으로 인한 그늘이 남아 있었던 2000년, 나는 전교생이 마흔 명 남짓 되는 초등학교의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농촌은 이농현상이 지속되면서 도시로 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로 북적거렸을 운동장은 조용하다 못해 황량했습니..
국민학교 졸업사진2(사진) 국민학교 학급졸업사진입니다. 1959년 늦가을이나 초겨울 쯤.... 아래서 셋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