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단의 추억/*********전반기

아찔한 운동회

          아찔한 운동회

 

예전에 시골에서의 국민학교 운동회는 학교의 가장 큰 행사임은 물론 지역의 큰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운동회를 위한 연습도 장장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9월초에 시작된 연습은 운동회가 열리는 10월초까지 이어졌습니다.

매일 오후는 거의 연습으로 채워졌으며, 운동회 날이 가까워 오면 하루 내내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벼이삭을 살찌운다는 9월의 따가운 햇볕도 운동장에서 시달려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배는 늘 쫄쫄거렸으며, 시원스럽게 목을 적셔줄 물조차 부족하여 항상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나는 젊다는 이유로 제일 난이도가 높기로 소문난 조립체조 지도를 맡았습니다.

사실 나에게 조립체조에 대한 지식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의 운동회 경험과 선배 선생님이 가르치는 방법을

어깨 너머로 들여다본 것이 조립체조에 대한 사전 지식의 전부였습니다.

  다만 교육대학에 다닐 때 배운 교육 이론 중의 하나가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었습니다.

즉, 부분적 접근, 전체적 접근, 통합적 접근이라는 단계적 지도 방법이 립체조에도 적용될 것 같았습니다.

  5교시가 시작되자마자 앙칼지게 불어대는 내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은 앞 다투어 운동장으로 모였습니다.

첫날부터  아이들의 정신 무장에 나설 속셈이었습니다.

조립체조는 넘어지고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자칫하면 아이들의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잠시도 정신 이완을 허용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것이 조립체조에 대한 내 선입견이자 확고한 지도 방침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긴장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를 한 시간 내내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교육의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내심 군대식으로 따라주기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둘째 날부터 강도 높은 연습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넘어지고 나뒹구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수록 매정하게 몰아붙였습니다. 성인들의 훈련도 아닌데 무지하고 단순한 지도 방식을 고수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어려운 종목이 성공적으로 완성되기라도 하면, 나는 호루라기를 더욱 힘차게 불어대며 신바람을 냈습니다.

한참 열이 오르다보면 다음 종목의 연습 시간까지 잠식하여 그 선생님과 말싸움으로 벌이기도 했습니다.

  의욕을 앞세운 이런 지도 방법의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도 없이 나는 몰아세우고,

아이들은 따르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연습이 끝날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모래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어른 같으면 지쳐 들어 누었을지도 모를 활동량을 아이들은 묵묵히 소화해냈습니다.

그러나 묘한 것은 다음에 기마전 경기 연습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힘이 되살아나 그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미가 있으면 없던 힘도 솟아나는 게 아이들이었습니다.


 운동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전날과 다름없이 조립체조 연습이 시작되고,

하이라이트인 소위 인간 오층탑 쌓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나와 아이들은 물론 보조 선생님들도 긴장한 가운데, 탑을 쌓을 아이들의 주변으로 모였습니다.

  무엇보다 탑을 쌓는 중에 무너져 정점에 올라간 아이가

땅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부상의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교적 건장한 고학년 아이들이 맨 아래층에 어깨를 걸고 둥그렇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점차 작은 아이들이 조를 이루어 한 층 한 층 쌓아 올라갈 때마다 아이들의 다리는 후들거렸습니다.

  드디어 작은 체구에 날렵하기로 소문난 인수가 정점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둘레에서 지켜보고 있는 선생님들의 눈도 일제히 탑의 끝을 향해 따라 올라갔습니다.

내 긴장의 끈도 갈수록 팽팽함을 더해갔습니다.

조금이라 삐끗하는 모습이 보이면 머리가 싸늘해지며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한 번 멈칫거린 것을 빼놓고는 비교적 거뜬하게 4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제 인수가 꼭대기에 올라서서 다리를 쭉 펴고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 양팔을 위로 올리면 대작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대담하기로 소문난 인수는 나의 손짓 신호와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아주 천천히 무릎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물도 차면 넘치고 과욕이 지나치면 사단이 나는 것.

그 때 4층을 쌓았던 두 아이 중의 하나가 다리를 휘청거리더니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꼭대기에 있던 인수가 땅바닥으로 털썩 떨어진 것은 거의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연습 기간 내내 우려했던 상황이 내 눈 앞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재빨리 달려가서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축 늘어진 채 말이 없었습니다.

순간 앞이 깜깜하고 멍해졌습니다.

행동 빠른 선배 선생님이 얼떨떨해 있던 나를 밀치더니 인수를 안고 보건소로 달려갔습니다.

  운동회 연습 중에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에 내 머리 속은 온통 불길한 예감으로 꽉 찼습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따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대충 정리하고 보건소로 달려갔습니다.

바로 그때 보건소 정문으로 선생님과 함께 걸어 나오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인수였습니다. 인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짓말처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인수는 떨어지는 순간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긴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어둠의 미로를 빠져나온 나는 환희의 빛을 보았습니다.

  운동장에 들어선 인수는 어느 샌가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그 동안의 과정을 낱낱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무용담이라도 이야기하듯…….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고맙다. 인수야!'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의 소리 없는 원성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들으려 하지도 않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무지하고 설익은 지도 방법은 나의 교직생활 중 가장 저급하고 부끄러운 기억 중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1974년 ≡

' 교단의 추억 > *********전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금과 빠이롱  (0) 2008.12.18
어설픈 열정  (0) 2008.12.13
모교의 교단에 서다.  (0) 2008.12.02
막걸리 문화에 젖어  (0) 2008.11.26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교단 첫날에  (0) 200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