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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을 두드리며 자신감을 키우는 아이들 북치며 자신감을 키우는 아이들 교문에 들어서니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북소리가 신명나게 들려왔습니다. 난타부 아이들은 때로는 선생님들보다 먼저 등교하여, 북을 두드리며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엇보다 큰 소득은 차곡차곡 ..
어설픈 열정 어설픈 열정 모교인 영원국민학교에서 처음으로 6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6학년 담임은 내가 바라던 터라 학년 초부터 학생 교육은 물론 학급 경영을 의욕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맡겨준 업무도 군말 없이 척척 처리하는 걸 보고, 한 선배교사는 나에게 아이디어뱅크라는 별명도 붙여주었습..
아버지의 무게를 처음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무게를 처음 알았습니다. ≡1958 가을 ≡ 가을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면 하굣길의 우리들 그림자도 괴물처럼 길게 늘어집니다. 신작로 주변의 밭에서는 종일 캐 놓은 고구마를 담느라 농부들의 손길이 바삐 움직입니다. 나는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신발을 질질 끌며 집에 들어섰습니다. 늘어지..
혼돈스러웠던 고교 시절 혼돈스러웠던 고교 시절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만 해도 우리 집은 논 대여섯 마지기를 지으며 그런대로 일곱 식구의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애당초 농사에 체질이 맞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는 마을 일과 서예에 더 애착을 보였습니다. 농촌에 사는 분답지 않게 깔끔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사다니기 바빴던 신혼생활 이사 다니기 바빴던 신혼 생활 읍내 구미동의 셋방에서 출발한 내 신혼 생활은 겨우 3개월 만에 그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출퇴근하기 가깝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그리 멀지 않으니, 신태인으로 이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어른들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분가 후 첫 번째 ..
1969년, 초임학교에서의 수업 모습(사진) 교단 첫해인 1968년, 정읍신풍국민학교의 5학년 1반 수업 모습입니다. 교단 둘째 해인 1969년, 정읍신풍국민등학교의 6학년 1반 수업 모습입니다.
참새 떼와의 전쟁 참새 떼와의 전쟁 벼이삭이 나온 후부터 고개를 숙이기 전까지 참새 떼는 들녘의 불청객으로 농부들을 괴롭힙니다. 참새들은 이리저리 떼로 몰려다니며, 어린 벼이삭을 닥치는 대로 빨아먹어 채 여물지도 않은 벼를 쭉정이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무렵 논에 나가 참새와의 일전을 벌이는 일은 ..
모교의 교단에 서다. 모교의 교단에 서다. 국민학교를 졸업한지 열 한 해, 선생이 된지 세 해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하던 영원초등학교에 선생이 되어 되돌아오던 날, 나는 흥분과 감회로 만감이 교차되었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교실이 있던 자리에는 새 교실이 들어서 있었으나, 드넓은 운동장은 옛 그대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