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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자작수필방

(자작수필)쪼가리 땅에도 봄은 온다

제10회 경북일보청송객주문학대전 수필부문 장려상 수상작품

 

 쪼가리 땅에도 봄은 온다 / 문경근

 

겨우내 잠자던 땅이 부스스 깨어나는 기미가 보인다. 한 노인이 길가의 공터에서 흙을 뒤적이고 있다. 아직 비몽사몽 뒤척거리는 흙을 깨우려는가 보다. 농로를 따라 산책하는 나는 옷깃을 여미는데, 일하는 노인은 겉옷을 벗어부쳤다. 아직은 바람 끝이 차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구부리고 있는 노인의 등에서도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도시에 몸을 붙이고 살면서도 작물을 가꾸려면 요맘때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도로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가 버티고 있고, 노인이 일하고 있는 이곳 주변에는 제법 넓은 과수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틈새에 숨어있는 듯 공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보기엔 버슬버슬하니 정이 가지 않는 땅일 뿐이다. 노인은 예전에 농사깨나 지어본 솜씨가 남아있기에 눈썰미가 작동한 것이리라. 주인조차 버려둔 이 땅은, 지금 공을 들이고 있는 노인이 임자라 할 수 있겠다.

길가에 내박쳐진 듯 길쭉하게 늘어진 땅은 각지게 모아놓아도 서너 평쯤 될까 말까다. 면적이나 토질로 보아 농작물을 가꿀 만한 땅이 아닌 듯싶다. 하지만 그 노인은 어엿한 농장을 다루듯 봄철 농사 준비에 분망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천덕꾸러기 아이가 노인의 덕분에 새 주인을 만난 것이나 진배없어 보인다.

아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몸을 요리조리 꼼지락거린다. 잘 만큼 잤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차린 부모가, 팔도 주물러주고 다리도 풀어주면 방긋 웃으며 눈을 뜬다.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땅도 봄기운이 가까이 올 때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훨씬 수월하리라. 누군가 겨우내 쌓였던 찌꺼기를 걷어내고 뒤적여주면 땅도 이에 화답하며 기지개를 켤 것이다.

노인은 쪼가리 땅에 새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듯, 아직 잠결인 흙을 괭이로 골고루 긁으며 잠을 깨운다. 넓건 좁건 땅도 한 해를 무리 없이 견뎌내려면 몸풀기가 필요할 것이다. 노인은 일 년 농사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머릿속으로는 쪼가리 땅을 꽉 채운 채소와 소박한 녹색 밥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노인의 정성이 가상하여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인다.

노인의 쪼가리 농장 옆으로는 나의 단골 산책길이 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노인은 거기에 있었다. 옆에는 거름 몇 포대도 쌓여있고, 한 편엔 노인이 손수 만들어 놓은 듯한 허접한 시설물이 눈에 띈다. 틈새로 들여다보니 호미, 괭이, , 갈퀴, 물뿌리개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 정도면 어엿한 농사용 창고라 할 수 있겠다. 내 눈엔 이 노인이 농사 무지렁이는 아닌 듯싶다. 나도 젊어 한때 농촌에 살며 부모님의 농사를 도왔던 이력이 있다. 덕분에 갈퀴와 쇠스랑조차 구별 못 하는 농사 무식꾼은 아니다.

보아하니 내 또래인 듯하다. 뭔가 말을 건네볼까 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성거렸다. 󰡒농사 좀 지어보신 것 같네요.󰡓 배시시 웃으며 화답하는 모습에서 농사꾼의 향기가 풍긴다.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아들네 아파트로 온 지 삼 년 정도 됐네요. 알기는 하겠는데 쉽지 않아요.󰡓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말을 풀어놓는다. 시원찮아 보여도 이것도 농사라고 손이 많이 간단다. 지난해에도 노인 내외 채소 푸지게 먹고 자식들도 몇 줌씩 갖다주었다며, 신바람을 낸다. 손바닥만 한 농장에서 거두는 재미가 옹골졌던가 보다.

호랑이는 힘없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공 몇 개만을 던지기 위해 등판한 야구선수도 혼신을 다해 투구한다고 한다. 호랑이나 구원투수는 상황을 가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한다. 비록 좁은 땅이지만, 마치 넓은 밭 한해 농사짓듯 최선을 다하는 노인의 모습에 존경심이 인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나는 건강을 위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지만, 한가하게 산책이나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오히려 부끄럽다. 나는 과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던 가, 되돌아보면 저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입에 풀칠하기조차도 어려웠던 옛 시절, 줄줄이 자식이라 허리가 휘었던 가장의 애달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죽하면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그중 가장 못난 자식 하나를 내박치게 되었다. 장 바닥에 버려진 그 아이는 용케도 맘씨 좋은 촌부의 눈에 띄었다. 아이를 거두어 내 자식처럼 씻겨주고 입혀주고 먹을 것도 주었단다. 때꼽재기 떨어진 그 아이 얼굴에 화색이 돋듯, 노인 덕분에 하찮은 쪼가리 땅에도 봄은 오고 있다. 노인은 오늘도 쪼가리 땅에 온 정성을 다하며, 소소한 일에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음의 상처로 응어리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도 봄바람이 찾아들고, 삶의 그늘 속에서 터덕거리는 이들에게도 봄빛이 스며들기를 빌어본다. 쪼가리 땅에도 봄이 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