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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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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말하는 데는 도통 재주가 없어서인지 조리 있고 긴말로 좌중을 이끌어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감칠맛 나고 유머까지 섞이면 금상첨화다. 그런가 하면 짧은 한마디인데도 오래도록 마음에 꽂히는 경우가 있다. 성현(聖賢)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예전에 같은 마을에 살던 어르신 이야기다. 입은 무겁고 가방끈은 짧지만, 마음씨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무거운 입을 열어 한 마디씩 던지면 짧지만, 속 깊은 말이 되었다. 마을에서도 쓸 말만 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사람은 어김없이 그의 한 마디 경고를 들어야 했다. 거짓부렁 하는 아이들도 그의 꾸지람엔 고개를 숙였다. 그가 헛기침하며 나타나면 그의 입을 주목해야 했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한 마디는 ‘사람이 그러면 못 쓰는 거여.’였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요즘에 와서 되새겨 보면, 큰 가르침이 들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화려한 수사(修辭)나 자상한 설명이 없었는데도 그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짧지만 얼마나 의미 깊은 말인가. 아마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이야기라 그런 것 같다. 찬찬히 곱씹어보면 그의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는 ‘사람 노릇’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 노릇을 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원초적 질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사람 노릇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치자. 아마 이 말처럼 치명적인 평판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사람 노릇은 하며 산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있으니 그리 부끄러운 삶은 아니라며 자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사람 노릇 하면서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얼버무리거나 궁색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 노릇이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노릇인 줄 알면서도 대답하기 쉽지 않다.
조선 중기의 문인 성여신은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면 집이 광채가 나고,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집이 잡초로 덮인다.’라는 말로 아들을 훈계했다 한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맡은 바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해독을 끼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른 노릇 제대로 못 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힘들게 한 어른들이 새겨들을 이야기다.
사람 노릇 중에서도 어른 노릇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일이 어른 노릇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며 자탄하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요즘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어른들이 있어 국민의 탄식을 부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뻔뻔한 손을 가슴으로 옮겨, 나 자신의 어른 노릇부터 살펴볼 일이다. 사람 노릇 제대로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사는 동안 정녕 이룰 수 없는 명제일까. 오늘도 촌로(村老)의 짧은 한마디가 나를 향해 꾸짖는다. 세상을 향해 매섭게 질책한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쓰는 거여.’
△수필가 문경근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학교 잘 다녀왔습니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