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수필/2014.10.18.)
소설(小說) 무식쟁이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지 않고, 물기가 번드르르 돌게 마련이다. 양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비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 제격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소설《태백산맥》제1권의 일부분이다. 이 대목을 읽고 있으려니 며칠 전 벌교지역 여행길에 먹은 꼬막 요리의 모습과 맛이 그대로 떠올랐다. 꼬막에 대한 절묘한 묘사로 다시 한 접시를 받아든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희한한 일은 내가 지금 소설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10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을 추켜들다니 나로서는 대단한 변화다. 너무 길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그동안 들여다보기를 꺼렸던 책이 소설이다. 시작한다 해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끈기 부족 탓도 있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태백산맥》앞에 앉게 되었을까. 기력도 예전 같지 않고 눈도 침침한 늘그막에 말이다.
나에겐 그럴 만한 연유가 있다. 얼마 전에 사위와 함께 보성, 순천 지역 여행길에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에 들렀다. 마음이 끌려서라기보다 평소 책 읽기를 즐기는 사위의 권유를 뿌리칠 수는 없어서였다. 요즘 수필 쓰기에 발을 들여놓은 나를 위해 마음먹고 챙긴 곳이라 생각하면 대충 둘러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동안 소설을 멀리 하고 있었던 터라, 소설《태백산맥》을 아직껏 읽지 않았음은 물론 작가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이 책은 조정래가 지은 대하소설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것이 내 지식의 전부였다. 그러니까 소설 무식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차피 먼 길을 온 데다 사위가 고심해서 선택한 여행 경로이니 이 기회에 소설 무관심에서 벗어나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문학관 내부에는 서너 명의 방문객이 있었지만,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아무리 소설의 변두리에서만 얼쩡거렸다지만, 대하소설 마지막 원고지의 마침표를 찍기까지 쏟았을 엄청난 정력을 어찌 짐작조차 못하겠는가. 막상 그 흔적들을 눈앞에 마주하니 짜릿한 감동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손때 묻은 취재장과 마치 고층건물 모형처럼 쌓여있는 1만6천여 매의 원고지를 대하는 순간 숙연했다. 창작의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표가 또 있을까.
전시물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내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도 공부려니 하며 위안으로 삼았다. 소설《태백산맥》이 세상에 나온 뒤에 겪었던 작가의 고초도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전시물을 눈여겨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데 해설사가 다가왔다.
“꼼꼼하게 살펴보시네요.”
그의 눈에는 내가 작가 조정래와《태백산맥》에 심취해 있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뭔가 말대답을 해야 할 성싶었다.
“조정래 씨 참 대단하신 것 같네요. 그분 고향이 여긴가요?”
그의 고향은 순천 승주이고 이곳 벌교는 작품의 주된 배경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나의 질문은《태백산맥》을 읽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책과 작가에 대해 무식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같아 순간 당황했다. 그는 나의 첫 질문에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시작부터 나에 대한 해설사의 기대가 무산되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태백산맥》을 아직 읽지 않았노라고 실토하려다 말문을 닫았다. 하찮은 자존심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그렇다고 나 한 사람을 위해 해설하며 친절을 베푸는데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건네야 할 말을 찾고 있는데, 언젠가 김제 벽골제 앞을 지나다 차창 밖으로 본 건물 이름이 언뜻 떠올랐다.
“김제에도 조정래 아리랑문학관이 있는 것 같던데요.”
그나마 한마디 거들 수 있는 소재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조정래나《태백산맥》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야 이야기를 거들 것 아닌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가 ‘《태백산맥》은 재미 읽으셨어요?’ 라고 물을까 봐 조바심이 컸다. 다행히 그는 마지막까지 그걸 묻지 않았다. 돌아서는 해설사의 등에서 나는 무언(無言)의 압력을 느꼈다. 내가 소설《태백산맥》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도 모른 채 하는 것은 아닐까. 2층 전시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진 것은 여행 피로 탓만이 아니었다. 소설 무식쟁이라는 모래주머니가 다리에 매달린 것이리라.
전시실 정면에 ‘소설 태백산맥 독자, 전권 필사본 기증 감사패 전달식’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에 전달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필사(筆寫)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 라는 글귀도 함께 붙어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뇌리 속 깊이 각인되는 한 마디였다. 진열장 안에는 원고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말로만 듣던 필사본(筆寫本)이었다. 엄청난 양의 원고지를 채우고 쌓는 동안 이 독자는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가슴이 뜨거워지고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얼굴도 모르는 그 독자에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10권의 대하소설을 한 자 한 자 손으로 베끼는 사람도 있는데, 읽는 일을 어찌 힘들다 할 수 있겠는가.
필사본 앞에서 나는 마음을 굳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늦게나마《태백산맥》을 독파하는 것이라고……. 6년여에 걸쳐 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우선 책을 읽는 일일 것이다. 또한 전권(全卷)을 필사한 독자에 대한 존경심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도 되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내 뇌리 속에서 맴도는 해설사의 말 없는 압력에 대한 반응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도서관에 들러《태백산맥》제1권을 빌리는 것으로 때늦은 숙제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연유로 나는 목하(目下)《태백산맥》독서 중이다. 다 읽으려면 몇 달을 넘어 1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어쩌면 중간에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해설사의 말없는 압력과 독자의 필사본을 가슴 속으로 불러들여야겠다. (20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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