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수필 2014.4.15)
학교 다녀 온 뒤
46년 전의 아침 인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학교에 처음 출근하던 날, 포마드를 잔뜩 바른 머리를 숙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었다. 그날 아침 생전 처음 입어본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내 모습은 얼마나 어설펐을까. 그러나 부모님 눈에는 선생이 된 아들의 모습이 대견해 보였던지 아침 내내 흐뭇한 표정이었다.
“잘 댕겨 오니라.”
어머니께서는 사립문 밖까지 따라 나와 연신 등을 토닥거려주셨다. 아버지께서는 늘 그랬듯이 지긋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 계셨다. 기쁨도 안에 담아두시는 분이었다.
그 길로 올라섰던 교단을 40여 년 만에 내려왔다. 퇴임하던 날, 나는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숙여 늙으신 어머님께 마지막 퇴근 인사를 올렸다.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
첫 출근 인사를 드릴 때는 풋풋한 총각 선생이었던 내가, 마지막 퇴근 인사를 드릴 때는 자녀 넷과 손주 다섯을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퇴임 인사와 함께, 그동안 내 글을 모아 만든 책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도 어머님께 드렸다. 부모님께 드리는 나의 교단생활 보고서이자, 자전적 기록이었다.
며칠 후엔 아버님 묘소에 그 책을 바치며 무릎을 꿇었다. 교직의 길로 이끌어주신 아버지 생각에 한동안 눈물을 그렁거리며 앉아있었다. 첫 인사와 마지막 인사 사이에 흘렀던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나의 퇴임은 첫 출근 때부터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느닷없이 당한 일이 아니었으며 이미 준비된 끝이었다. 퇴임을 앞두고 은퇴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심정적인 아픈 치레 없이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인생의 긴 여로에서 경로를 바꾸거나 차를 갈아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퇴임하던 날, 그동안 내가 입고 있었던 학교와 선생이라는 옷을 한꺼번에 벗어버렸다. 때로는 뿌듯하게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여겨왔던 이름들을 내려놓으니 날아갈 듯 홀가분했다. 웬만한 건 내려놓고 비우며 여유를 부려보자고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가르치는 일이 아닌, 해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한 균형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삼았다. 편안히 눌러 앉아있는 것을 최대의 적으로 못 박아 두었다. 홀가분한 일상을 눈앞에 그려보니 심신이 절로 가벼워졌다.
그런 가운데 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노후에도 바쁘게 살아야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선배들의 충고였다. 그래서인가. 첫날부터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일 저 일의 주변을 얼쩡거렸다. 그리고 마치 익숙한 일처럼 머뭇거림 없이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의 거침없는 행보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무엇을 하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나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그러는 동안 내게 맞는 일이 있는가 하면, 맞지 않은 일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이 한다고 해서 덩달아 따라 한 일도 있었다.
은퇴생활 4년이 그렇게 지났다. 이쯤 해서 숨 고르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동안의 일들에 대한 중간평가를 해보니 나의 공약 이행률은 기대만큼 되지 못했다. 하다 만 일도 적지 않다. 낙제점에 가까운 것도 있다. 은퇴 후 해왔던 일들이 다소 방만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쉬운 성적표를 대하고 보니, 나의 은퇴생활 2기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새로운 각오로 시작해야 할 성싶다.
퇴임하게 되면 선생으로서 몸에 밴 것들을 깡그리 잊어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었지만, 애초부터 그건 되지 않을 일이었다.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일을 던져버리고 무슨 의미를 새롭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도피와 자기부정이 아니었던가 싶다. 내 안에서 수십 년 동안 자라온 선생이라는 유전자는 이미 삭제할 수 없는 파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퇴임 후 4년여 동안 해왔던 일들만 보아도 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새로 시작한 글쓰기 공부만 해도 그렇다.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머릿속을 들락거린 일이었다. 생각만 있었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미련하게도 학교 일에만 매달렸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이제야 미완의 숙제를 다시 끄집어냈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나의 은퇴생활 중에 잘한 일 가운데 하나는 수필 쓰기라는 필생(筆生)의 꿈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늦었지만 때늦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지금 하지 못하면 한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퇴임에 맞춰 자전(自傳) 에세이집을 냈었지만, 이제 와 들여다보니 허술한 곳만 눈에 띠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말로 궁색한 변명을 해보지만, 다시 거둬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이젠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평생교육원에 수강 신청을 하고 수필공부에 매달린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등단의 꿈을 이루고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이제야 숙제를 마친 셈이다. 그런데 꿈 너머에 또 다른 꿈이 기다리고 있다. 수필집을 내는 일이 그것이다. 생각이 살아있고 그걸 글로 쓸 여력이 있을 때까지 해야 할 숙제다. 즐거운 숙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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