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수필/2014. 3.7)
물오름 달에
3월은 ‘물오름 달’이라는 예쁜 이름이 잘 어울리는 달이다. 이맘때쯤 만물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니, 3월의 이름으로서는 제격이다. 이름만으로도 어깨를 펴고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추위가 물러간 자리에 봄기운이 스며들면서 산야는 긴 휴식과 충전을 끝냈다. 사람들도 자연의 순리를 따라 기지개를 활짝 켠다. 물이 오르며 봄이 온다는 신호다.
사람마다 봄을 느끼는 대상이 다를 터이니,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는 이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봄이 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막 돋아난 새싹을 들여다보며 봄을 알아차리는 것은 초보적 감성이라 할 수 있다. 뽀얀 나뭇가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이 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앙증맞은 꽃망울을 들여다보며 봄을 만났다고 반색하는 사람은 봄 마중이 좀 더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걸음 먼저 핀 철쭉 화분을 보듬고 들어와 봄을 사왔노라고 가족들 앞에서 으스대는 가장도 있다. 감성이 다르듯 봄을 느끼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른가 보다. 공통점이 있다면 자연 속에서 봄을 본다는 것이다.
나는 산야의 초목보다 움직이는 아이들에게서 봄을 먼저 알아차리곤 했다. 3월 초면 봄맞이보다 먼저 아이들을 맞는다. 입학식과 시업식은 봄의 다른 이름이었다. 수십 년 동안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리된 것 같다. 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은 용케도 봄을 알아차린다. 굼뜬 아이들도 박차고 나온다. 놀이터에 뛰쳐나온 아이들의 움직임은 활기차고 거칠 것이 없다. 왁자지껄한 소리에서도 기운이 넘친다. 겨울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다. 어린이들은 약동(躍動)의 몸짓으로 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새 학기 첫날이었다. 그동안 여유를 즐기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부산한 날이었다. 나도 마치 등교하는 기분으로 일찌감치 가까운 학교로 향했다. 봄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초등학교 등굣길이기 때문이었다.
등굣길은 설렘과 기대로 들떠있었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의 얼굴은 마치 떼 지어 피어있는 꽃 잔디처럼 해맑았다. 삼삼오오 조잘거리며 걷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절로 힘이 솟았다. 그들은 등굣길의 주인공이며, 봄을 실어 나르는 전령들이었다. 얼굴엔 기대와 흥분으로 물이 오르고 있었다. 내 기분도 덩달아 들떴다. 이맘때쯤 도심의 조급한 발걸음과 쫓기는 표정들에 비하면 이곳은 가뿐한 봄의 거리였다. 이날 나는 아이들을 보며 온몸으로 봄을 느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쫄랑쫄랑 따라가는 1학년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60년 전 내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아마 가슴에 손수건을 매달고 꽃샘추위에 움츠리며 집을 나섰을 것이다. 궁핍했던 시절이라 행색은 초라했지만, 학교에 다닌다는 게 아마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우리 반 선생님은 누구일까? 처음 학교에 들어가는 기분이야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성싶다.
물오름을 찾아 나선 아이들을 보고 그저 웃기만 했던 일이 있다. 시골학교에서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일이었다. 3월은 나무에 물이 오르는 달이라고 알려 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야 궁금증이 풀린다는 표정이었다.
다음 날이었다. 교문에 들어서니 우리 반 아이들 서너 명이 느티나무 주변에 모여 뭔가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어디서 구해 왔는지 장난감 청진기를 나무 몸뚱이에 요리조리 대보고 있었다.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선생님, 물오르는 소리 안 나는데요.”
나도 나무에 바짝 다가가 조심스럽게 귀를 댔다. 아이들도 우르르 달려들어 나무에 귀를 비볐다. 나는 쉿! 하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이들의 다소곳한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물오르는 소리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의 콩닥거리는 가슴 속에도 물이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훔쳐보며 내심 봄을 즐기고 있었다. 물오르는 소리를 듣겠다며 나무에 청진기를 문지르던 아이들의 엉뚱한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봄이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 같다.
아이들의 힘찬 몸짓을 보면서 어른들도 다시 힘을 냈으면 어떨까 싶다. 새해 첫날의 결심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의 덫에 걸려 자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3월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연초의 다짐이 차분한 기원이라면, 3월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달 아닌가. 교문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발걸음처럼 나도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한번 시작해보리라. 봄의 시작을 알리는 물오름 소리와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발걸음에 편승하여 다시 시작한들 누가 탓하겠는가. 아주 주저앉는 것보다 몇 배 나으니 박수를 받을 일이다. 모두 물오름 달 3월이 준 기회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20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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