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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거리 달래기

 

   (자작수필/2014.2.14.)

                                    걱정거리 달래기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시청하다가 ‘안 생겨요.’라는 코너에 눈길이 멈췄다. 멀쩡한 청년 둘이 나와 16년 동안 여자 친구가 안 생긴다며 푸념하는 한숨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웃기면서도 안쓰러웠다. 걱정치고는 좀 사치스러워 보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걱정거리인가 보다.

   현대인 치고 이런저런 걱정 보따리 몇 개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늘 달고 다닌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에는 먹을거리의 걱정 보따리가 가장 컸을 것이다. 애면글면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 끼니가 염려되었으니 말이다. 먹을 것만 해결되면 아무런 근심이 없을 것 같은 때였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부안 산중에 사시던 고모가 우리 집에 들르신 날, 고모와 어머니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셨다. 각별히 정이 많으신 데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말이 참 많았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먹을거리와 자식 걱정이 끝없이 이어졌다. 간간이 뿜어 나오는 한숨 소리는 차라리 신음에 가까웠다.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리하셨을까. 나는 잠결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먹는 일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난 요즘은 어떤가.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엔 다른 걱정들이 채워지고 있다. 걱정이 없어 마음 편하다며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게 사람이다. 남들 앞에서는 표정 관리를 한다고 신경을 써보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크든 작든 걱정거리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걱정거리가 먼저 고개를 내미는 날이 적지 않다. 퇴임하고 나면 어깨에 짊어진 걱정거리가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출근의 부담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짐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신경 쓰이는 일들이다. 젊은 시절 같으면 걱정 축에 끼지도 못하는 것들이 머리를 쓰게 할 때도 있다. 건강에 대한 걱정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건강의 가장 큰 적은 건강에 대한 염려라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예전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일들이 이젠 전면으로 나섰다.

   요즘 사람들의 걱정은 자신에 대한 것만이 아닌 것 같다. 가족과 직장은 물론 세상 걱정까지 그 대상도 다양해진 것 같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 보따리가 줄을 선다. 3년 만에 조류인플루엔자가 새로운 근심거리로 등장했다. 믿고 썼던 신용카드는 거의 모든 성인에게 묵직한 걱정 보따리를 안겨주며, 신용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을 편하게 해야 할 일부 정치인들은 오히려 짜증을 유발하고 있다. 참으로 걱정거리가 많은 세상이다.

TV 뉴스를 보면서 혀를 차는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제 걱정은 감당 못 하면서 세상 걱정을 하고 있다. 세태에 대한 걱정은 내 안에 들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보이고 들리는데 이를 어쩌랴. 그렇다고 이런저런 걱정을 늘 달고 다니자니 삶이 너무 무겁지 않은가.

   캐나다의 작가 어니 젤린스키의 분석에 의하면 걱정의 실체는 이렇다.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사소한 고민거리거나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들이다. 즉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며 4%만이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란다. 나 역시 지금까지 헛된 걱정에 매달려 끙끙거리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니, 이런 한심 덩어리가 있는가. 나이는 백 년을 살면서 항상 천 년의 근심을 가슴이 품고 사는 게 사람이라더니, 걱정은 정녕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걱정들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걸 알아야 안고 가든지 버리든지 할 게 아닌가. 대청소하듯 걱정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았다. 꼼꼼히 들춰보니 내 보따리에는 이런 것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마치 일어날 것처럼 가정하며 걱정을 키웠다. 지난 일을 붙들고 덧없는 걱정도 했다. 작고 하찮은 걱정도 적지 않았다. 신경을 써봤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도 매달렸다. 걱정거리를 스스로 만들어서 그걸 확대하거나 재생산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나에 대한 걱정은 대부분 나로 인한 것이니, 이를 떨어내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아무래도 불안 심리나 과욕이 그 원천인 듯싶다. 그걸 내려놓는 게 먼저일 것 같다. 나이 든 이가 경계할 일 중의 하나는 욕심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욕심이 걱정을 부르니,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통째로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니, 걱정 보따리를 모조리 비워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가진 보따리는 가볍게 하고, 새로운 걱정을 덜 만드는 것이 상책일 듯하다. 어차피 걱정이란 놈을 어느 정도는 끼고 살아야 한다면 이들을 어르고 달래면 어떨까 싶다.

   재미삼아 걱정거리를 글로 적어본 적이 있다. 끙끙대며 부대끼다가 이를 글로 풀어놓으니 정체가 드러나면서 별것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걱정의 반대쪽을 키워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나에게는 걱정거리보다 즐거운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며, 작지만 기쁨을 주는 보따리를 꼼꼼히 챙겨보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걱정 보따리는 저절로 작아질 것이 아닌가.

(정남진에서 내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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