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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자작수필방

가래떡과 시루떡

 

(자작수필/2014.2.3.)

                            가래떡과 시루떡

 

             

  “웬 떡이야.”

  뜻밖의 행운이나 횡재를 만났을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생각지도 않은 떡이 나오면 웬 떡이냐며 반색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떡을 보고도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명절 때다. 명절엔 떡이 당연히 나오는 음식이기 때문이리라.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에도 설이나 추석이 되면 다른 것은 몰라도 떡은 꼭 챙겼다. 차례상에도 떡이 올라야 비로소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떡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올 설엔 어떤 떡이 상에 오를까. 때마침 지인이 택배로 보낸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궁금하여 얼른 풀어보니 그 안엔 떡이 가득했다. 형형색색에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올망졸망한 것들이 낱낱이 포장되어 깔끔해 보였다. 떡이 변신에 놀라울 따름이다. 예전의 떡은 푸짐하고 은근한 맛이 있었다. 요즘은 화려하고 맛깔스럽게 변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떡인들 달라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니 떡의 변신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떡 속에 담긴 기원과 나눔의 정신만은 그대로 이어져 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화려하게 치장한 떡을 대하니, 오히려 어린 시절 떡의 추억이 떠올랐다. 설이 눈앞이라 그런가. 어린 시절 설 전날이었던가. 가래떡을 빼러 면 소재지에 있는 떡 방앗간에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신작로엔 눈이 수북이 쌓이고 엄청나게 추운 날씨였다. 가는 길은 그런대로 쫄랑거리며 걸어갔다. 기계로 떡을 빼는 모습을 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추위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떡 방앗간에 길게 늘어선 줄도 너끈히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설 기분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가래떡이 길쭉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방이 어두워진 뒤였다. 집에 돌아갈 일을 생각하니 심란했다. 사방이 캄캄한 밤인데다 눈보라까지 몰아쳐 길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눈발 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과 마을이 가는 길을 짐작케 해줄 뿐이었다. 이야기 속의 귀신이나 도깨비가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이런 몹쓸 것들은 어린 나에게는 허깨비가 아닌 실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 걸었다. 아버지는 모든 걸 다 물리칠 수 있는 든든한 존재였다. 춥고 무서워서인지 설이고 떡이고 빨리 집에 도착하여 따뜻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어쨌든 낮에 나가 한밤중에 돌아왔다. 떡 방앗간에서 기다린 시간 말고도 눈 속에서 헤맨 시간에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온 가래떡은 다음날 설에 따끈한 떡국으로 차려졌다. 어젯밤 너무 늦은 것은 우리가 귀신에 홀린 거라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그 뒤에도 한동안은 우리 부자를 헤매게 한 귀신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도 심심찮게 오르내렸다.

  가래떡을 빼 오시던 아버지께서 저 세상으로 가신지 20년이 넘었다. 밤늦게까지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아흔이 되셨다. 이제 가래떡은 내 담당이 되었다. 떡 방앗간을 찾기보다 가까운 떡집에 가서 먹을 만큼만 사왔다. 가래떡이 든 비닐봉지가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해마다 명절과 아버지 기일이 가까워져 오면 시루떡 찌는 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예전에 시골에 사실 때, 시루에 쌀가루와 팥고물을 번갈아가며 켜켜이 넣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요즘은 아파트 안에서 찜통을 이용하여 찌지만, 그 정성만은 변함이 없으시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이 무렵엔 발길이 한층 부산해진다. 먹어주는 사람이 적어진 탓으로 예전같이 푸짐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시루떡 찌는 솜씨는 여전하시다.

  우리 가족이 올 설에도 시루떡 맛을 볼 수 있는 것은 건강하신 어머니 덕분이다. 투박한 손으로 뚝 떼어 입에 넣어주시는 떡 속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났다. 저마다 입을 내밀며 받아먹는 모습이 환했다. 떡 맛이 최고라며 쏟아내는 찬사에 어머니는 소녀같이 웃으셨다.

  이번 설에도 떡을 내놓으시면서 한마디 하셨다.

  “내 늙어서 내년엔 못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시루떡을 찌셨다. 나는 어머니의 시루떡을 오래오래 맛보고 싶다.

  우리 집 가래떡 속에 아버지가 계신다면 시루떡 안에선 어머니가 보인다. 생전의 아버지는 농촌에 사시면서도 한학과 붓글씨에 매달렸다. 키가 훤칠하고 깔끔하여 떡으로 치자면 가래떡 같은 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어머니는 수수하고 정이 많아 시루떡을 닮았다.

  나는 올 설에도 아버지를 닮은 가래떡과 어머니 같은 시루떡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20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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