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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자작수필방

손주들이 몰려왔다..

 

                       손주들이 몰려왔다.

                                                                                                                                       - 2014.1.19 - 

            

  연초의 휴일을 맞아 손주 다섯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딸 셋 사위 셋도 함께 들어왔지만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손주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들로 인해 집안은 일순간에 따뜻한 기운으로 채워졌다. 신발을 벗자마자 머리가 땅 닿게 인사하는 모습이 예쁘다. 덥석 안기는 손주는 일단 후한 점수를 얻고 들어간다. 손주들의 연령대는 두 살부터 여섯 살로 그야말로 천지 분간 못 하고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이다.

  우리 집은 기분 좋은 비상사태로 돌입했다. 나는 손주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대비를 철저히 해두었다. 뾰족한 물건은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옮기고 거실 바닥에도 푹신하고 널찍한 깔판을 깔았다. 손주들의 안전을 위협할 만한 것들을 빠짐없이 손봐놓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이들도 입이 즐거워야 짜증을 안 부린다. 간식은 손주들의 기호를 고려하여 넉넉하게 준비해두어야 뒤탈이 없다. 손주들에 대해서는 우리 내외도 알만큼은 알고 있다. 이만큼 자라기까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2년여 동안 길렀기 때문이다.

  손주들이 도착하고 잠시 숨을 돌린 뒤 곧바로 적응 지도에 들어갔다. 추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주로 방안에서의 행동 요령을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거실에서 뛰지 않도록 특별 단속도 해두었다. 요즘 아파트의 층간 소음 분쟁이 심각하다는 보도를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듣고 퉁탕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손주들을 보고 이야기했지만, 보호자인 딸 사위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지금도 선생님 티를 벗지 못했다며 딸들이 행여 흉을 보지 않을까 싶었다.

  나에게는 예전에 손주를 돌보는 동안 터득한 나름의 요령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눈높이를 맞추는 게 기본이다. 재미있게 놀아주어야 따르고 좋아한다. 말씨나 몸짓은 가능하면 아이처럼 한다. 옛날이야기도 고리타분하면 등을 돌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일지언정 오래토록 집중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참, 또 하나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다. 손주들과의 스킨십은 공평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손주들의 부모 눈치도 살피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한 손주들은 점차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손주들의 움직임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내 사전 지도의 유통기한은 예측대로 채 5분도 되지 못했다. 아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당연한 진도다. 이에 비례하여 아내의 조바심은 커져갔다. 손주들의 천방지축(天方地軸)에 아내는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무엇보다 아래층의 얌전한 부부에게 미안한 일이다. 손주들이 올 때마다 퉁탕거리기 일쑤지만 싫은 내색 한 번 없으니 더 그렇다. 요즘 TV 주말 드라마에서 어느 까칠한 할머니가 습관처럼 던지는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라는 과장법 대사가 떠오른다. 이 말을 한 번쯤 던져볼까 하다가 꾹 눌렀다. 뛰니까 아이들이고, 떠드니까 아이들이 아닌가.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손주들 중 하나가 잠드니 거실 안은 확연히 달라졌다. 시차를 두고 모두 잠이 든 시점에 우리 집 비상사태는 해제되었다. 그제야 어른들만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나는 변두리에서 어정거리다 슬며시 안방으로 들어왔다. 두 살배기 손주가 내 자리를 차지한 채 고이 잠들어 있었다. 거실에서는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는 잘도 자고 있었다. 아기가 잠든 모습은 평화와 순수 그 자체였다.

이 손주에게는 특별히 마음 짠한 일이 있다. 일곱 달쯤 돌보아주다가 첫돌 무렵에 부모 품으로 회귀했다.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한 딸의 결단으로 아기를 내주었다. 말이 부모에게 돌아간 것이지, 반은 어린이집이 아기의 거처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참이었으니 아기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현실과 타협하고만 아내는 ‘이게 아닌데…….’ 하며 며칠 동안을 가슴 아파했다. 나도 손주가 눈에 밟혀 놀던 자리를 먹먹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다음 날 아침이다. 무언가 내 얼굴을 매만지는 감촉에 눈을 떴다. 한발 앞서 잠이 깬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아침의 첫 신호였다. 천진난만한 웃음까지 얹어주니,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아침이 있을까. 손주를 꽉 껴안으니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번지는 것 같았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며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이 밀려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눈앞에서 기본 좋은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첫 단추를 기분 좋게 끼워준 손주 덕분에 나는 행복한 하루를 예약한 셈이다.

  오후가 되니 하나씩 보따리를 쌌다, 부모가 출근하려니 어쩔 수 없다.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내 바람하고 들어오니 집안이 휑하다. 방안의 온기까지 손주들을 따라갔는지 썰렁했다. 청소를 하려고 거실 깔판을 들추니 손주들의 재롱 부스러기가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 떠난 지 한나절도 안 되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핏줄은 이런 것인가 보다.

  21세기 중후반기 세상의 주인공이 될 손주들에게 1박2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뛰지 좀 마라.”였던 것 같다.

  ‘미안하다. 손주들아! 다음엔 공부 좀 해서 더 재밌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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