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괜찮은 두 집 살림
두 집 살림은 차린 지 5년이 지났다. 백수인지라 직장 때문에 그럴 리는 없다. 삼류소설에나 나올법한 은밀한 두 집 살림은 더더욱 아니다. 어쨌든 이런 형태의 살림은 나로서는 썩 괜찮은 같아 앞으로도 계속하여 유지 발전시킬 작정이다. 두 집 살림은 멈출 수가 없으며,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오늘도 두 집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두 집 살림의 실체는 이렇다. 한 집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현실의 집이니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다른 한 집은 사이버상이 있는 가상의 집이다. 이 낯선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르지만, 현실 밖에 또 다른 세상인 사이버 세상이 있단다. 젊은이들 사이에 사이버 세상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이버는 컴퓨터 안이나 각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망을 포괄해서 부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안에 존재하는 집이 바로 가상의 집이라 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내가 즐기는 블로그다. 블로그란 네티즌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게시물을 작성하여 올리는 웹 사이트를 말한다. 현실의 집이 본채라면 가상의 집인 블로그는 나만의 별채라고나 할까. 요즘 사이버 상에 이런 가상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두 집 살림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히면서 소통을 다양화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함이다.
내 블로그를 열면 우선 문패가 보인다. 「샘골 달님 이야기」라는 좀 길다싶은 이름을 달아 놓았다.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는데 방마다 쓸모가 다르다. 「사는 이야기 방」을 비롯하여 「요즘 내 생각 」,「나들이 보고서 방」,「사진 방」 등이 있다. 「제자들 방」과 「추억의 방」도 한 칸씩 마련해두었다. 앞으로는 방을 늘려 「수필 방」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습작들이 쌓이면 한 방에 모아두어야 다음에 다듬고 고칠 것이 아닌가.
요즘은 블로그의 각 방에 부지런히 세간(世間)을 들여놓는 일이 나의 일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까치가 집을 지을 때 온갖 소재들을 물어 나르듯, 쓸 만한 것을 골라서 들여놓고 있다. 그들에게 글이나 사진의 옷을 입혀 들여놓으면 보기에도 좋다. 주인인 나야 아무 때나 생각나면 들를 수가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다. 무단출입이 허용되어 있으니, 현실의 집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잠시 머물러 댓글이라는 차 한 잔쯤 들고 나가는 사람이 종종 있다. 들른 김에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에게는 유달리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짧은 한 마디가 그날의 힘이 되기도 한다. 블로그 속에서만 즐길 수 있는 옹골찬 맛이다. 그러니 두 집 살림 하는 재미는 여간 쏠쏠하지 않다는 것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아서 좋다. 가상의 집이니 우선 경제적 부담 없이 방을 늘일 수 있고, 살림도 마음 내키는 대로 들여올 수 있다.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다.
때로는 가상의 집에 보관해놓은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수필강좌에 다니면서부터는 내 블로그 안에는 뜻밖에 수필거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리라. 하나씩 꺼내 손질을 하면 수필이 되곤 한다. 블로그 안의 이야기가 현실 세계로 나와 수필로 재탄생한 것이다. 새 생명을 대하는 기분이다. 별채인 블로그에는 주로 여유롭거나 무료하다 싶을 때 들르기 때문에 현실의 집에 소홀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정도의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지 않았는가. 블로그에 몰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블로그 안에 너무 오래 들어앉아 있다가 식사 때를 놓칠 때도 있다.
“오늘은 외도(外道)가 좀 심하네요.”
보다 못한 아내가 핀잔을 놓는다. 블로그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 본연의 일은 아닐 테니, 이도 외도라면 외도다. 질투(?)까지는 아니겠지만, 별채에 오래 머무르는데 본채의 아내가 박수를 보낼 리는 없지 않은가.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아내도 관심을 두고 종종 드나들더니만, 요즘은 뜸하다. 눈치를 살피며 정도껏 머물러야 할 것 같다. 블로그도 알고 보면 현실이 그 모태다. 현실의 집 없이는 가상의 집은 존재할 수 없고 의미도 없는 것이다. 별채가 유혹에 홀려 그 집에 아주 눌러앉아 있을 수는 노릇이다.
내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최고의 목표는 내 삶의 일부를 그 안에 기록하여 보관해두는 창고로 삼는 것이다. 그냥 지나치면 사라져버리고 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아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려 함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억 장치나 치부책과 앨범에 담아두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은가. 블로그라는 별채가 없었더라면 작지만 소중한 일들을 다 어디에 보관해두었을까.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데 서투른 나에게 글로 말할 수 있는 블로그가 한몫해준다. 쫓기는 삶에서 잠시 물러나 찾아가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즐거움이다. 블로그라는 별채는 나에게 여유의 공간이고 삶의 충전소다.
삭막한 계절에 딱 맞는 세간 하나 챙겨 들고 별채를 찾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이맘때는 겨울 풍경이 제격이다. 오후에는 산에 가서 겨울나무를 카메라에 담아와야겠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오히려 짱짱한 겨울나무를 블로그에 옮겨놓으면 좋을 성싶다.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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