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즘 이야기★/***자작수필방

다시 갑오년이다.

 

                다시, 갑오년(甲午年)을 맞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문경근

    

  갑오년 첫날이다. 간간이 문자메시지 신호음이 울리며 새해임을 알려주고 있다. 메시지 안에 담긴 기원(祈願)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보낸 이의 마음을 내 안에 담는다. 고맙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해맞이하는 사람들의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갑오년이니 말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새해 기분에 젖도록 도와준다.

  잠시 밖을 내다보니, 때깔 좋고 두툼한 방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깔깔대며 지나가고 있다. 까까머리에 남루한 옷을 걸친 아이들의 움츠린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 틈에 끼어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며 잠시 옛날을 생각해본다. 지나간 갑오년과 다시 온 갑오년의 겨울 풍경을 떠올리면 가슴 속에서 잠시 찬바람이 인다.

  60년 만에 갑오년이 다시 돌아 왔다. 내 생애 두 번째의 갑오년이다. 그러니까 1954년 이후로 60년 만인 올해 다시 갑년(甲年)을 맞은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육십갑자(六十甲子)는 예로부터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갑년은 순환의 큰 마디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도 갑년을 맞으면 회갑이라 하여 많은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이젠 축복의 대상이 되는 나이는 훨씬 뒤로 물러가 있다. 인생은 60부터라며 늙은 나이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말조차도 수정해야 할 정도로 평균 수명이 느는 추세다.

  요즘엔 어떠한가. 칠십은 보통이고 주변에 여든이 넘은 어르신도 수두룩하다. 나이 60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나도 회갑을 넘은 지 꽤 되었지만, 솔직히 어르신 소리는 귀에 그리 반갑지 않다. 그러나 나이는 현실이다. 반추(反芻)의 길목에서 오던 길을 뒤돌아보는 것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다시 맞은 갑오년 아침에, 60년 전 나의 갑오년은 어떠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러나 기억도 유통기한이 있는 건지, 기억 주머니를 뒤적여보아도 그때 일은 잡히는 게 별로 없다. 더구나 그때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당시의 일이 얼마나 기억 속에 남아있겠는가. 6·25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여기저기 널려있던 시절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춥고 배고팠던 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게 무슨 고민거리였겠는가. 그저 주는 대로 먹고 입혀준 대로 걸치고 학교에 다녔다.

  나에 대한 기록이나 사진이 있으면 기억의 단서가 되겠지만, 그 시절엔 그게 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모든 일이 깡그리 잊힌 것은 아닌가 보다. 지난 갑오년의 일 중에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일이 하나 있으니 말이다. 가슴에 박힌 감동이나 잊지 못할 충격도 아닌데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바로 1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억이다.

  선생님은 운동장 조회 때마다 큼직한 출석부를 끼고 나오셨다. 그리고 그때마다 교단에 올라 수많은 학생을 향해 쩡쩡 울리는 소리로 말씀하셨다. 앞줄에 서 있던 나는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쳐들어야만 겨우 선생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작은 키에 어쩌면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왜 우리 선생님만 저 높은 자리에 오르셨을까? 교단에 우뚝 서 있는 우리 선생님은 언덕 위의 아름드리 소나무만큼 커 보였다. 지금부터 60년 전에 만난 선생님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자, 갑오년의 유일한 기억이다.

  기억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흐른 세월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큰 일도 깡그리 사려져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선생님은 교감선생님을 겸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훈화였던가 보다. 훈화는 보통 교장 선생님이 하는 데, 왜 교감선생님이었을까. 이것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다.

  갑오년의 우리 선생님은 그로부터 22년 뒤에 다시 높은 자리에 다시 섰다. 내 결혼식의 주례를 맡은 것이다. 아마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이 나에게 무슨 내용의 주례사를 하셨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하기야 결혼식 때의 주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쨌든 나에게 처음으로 한글을 깨우쳐주셨던 선생님이 그날은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 궁금하다. 인생의 새 출발점에 서 있는 나에게 앞으로 잘 사는 길을 가르쳐주셨을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60년 전 갑오년에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훈화를 하셨으며, 나에게 한글의 눈을 뜨게 해주셨던 선생님. 그리고 내 결혼식 주례로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지켜보셨던 선생님. 다시 돌아온 갑오년의 오늘, 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 선생님이 이 세상에 아니 계신다. (2014.1.1.)

 

'★요즘 이야기★ > ***자작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주들이 몰려왔다..  (0) 2014.01.23
혼자 걸으니 보이는 것들  (0) 2014.01.12
석 괜찮은 두 집 살림  (0) 2013.12.24
송년(送年)의 숨고르기  (0) 2013.12.16
어깨의 반격(反擊)  (0) 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