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의 반격(反擊)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수강중 습작입니다.)
양손으로 들어야 할 물건을 한 손으로 들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윗옷을 입을 때도 끙끙거려야 겨우 소매를 집어넣을 수 있다. 등을 긁을 때는 아내의 손을 빌려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지만, 몸의 균형도 흐트러진 느낌이다. 심할 때는 심사(心思)조차 편치 못하다.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타난 왼쪽 어깨 통증의 여파다.
그동안 견딜 만하여 방치해왔지만, 이제 한계에 이른 것 같다. 결국은 의사 앞에 앉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어깨를 만져보더니, 딱 잘라 말했다.
“전형적인 오십견(五十肩)입니다.”
오십견은 오십 대를 전후해서 어깨관절 주위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알려졌다. 이 나이에 무슨 오십견이냐며 의아해했더니, 아직 젊다는 증거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굳은 곳을 풀어주는 데는 운동이 최선이란다. 요즘은 물리치료와 의사가 권장하는 운동에 집중하며 어깨를 달래고 있다. 맘대로 휘돌리고 무거운 것도 거뜬하게 들던 때를 생각하면, 남자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동안 움직임이 적어서 굳어졌다니, 이는 모두 내 탓이다. 결국은 참다못한 어깨가 오십견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어깨가 반기(反旗)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법도 하다. 그동안 걷기에 매진하다 보니 어깨는 관심 밖에 있었다. 아무래도 아픈 쪽은 움직이지 않게 되고, 움직이지 않으니 아픔이 더해간 것이다. 나 스스로 악순환의 굴레에 걸려든 셈이다. 그러나 어깨의 반격은 나를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고 상생(相生)하자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주인에 대한 착한 반격이다. 기계도 무리하게 사용하면 고장이 나지만, 반대로 내버려두면 녹이 슬어 쓸 수 없게 된다. 신체의 각 부분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너무 많이 사용하여 탈이 나기도 하지만, 너무 안 써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몸이 아닐까.
3년 전에는 오른쪽 팔에 골프 엘보라고 불리는 통증 때문에 고생 좀 했었다. 그땐 팔과 팔꿈치관절에 무리한 힘을 준 결과였다. 원인으로 따지면 이번 오십견과는 반대의 증상이다. 팔의 통증이라는 불청객이 번갈아 나를 찾아온 셈이다. 그렇다고 부실한 팔이나 어깨에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깨가 주인을 잘못 만났으니, 원인 제공자는 나 자신일 것이다. 어설프지만 오십견 자책론(自責論)을 내세우며 자위해본다.
퇴임하고 한때 몸살림운동이라는 강좌에 몸담은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강사가 자주 했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가슴은 펴고, 허리는 세우고, 굳은 곳은 풀어주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이것이 건강 유지의 기본이라며 강조했다. 듣기만 하고 실천에 미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지금 생각하면 굳은 곳은 반드시 풀어주어야 한다는 말은 내 어깨에 대해 미리 알려준 처방이었다, 왼쪽 어깨 때문에 요즘 반대쪽 어깨가 고생하고 있다. 두 팔이 함께 할 일을 혼자 하려니 오죽 힘이 들까. 아픈 팔을 주무르면서 간간이 성한 팔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요즘은 아침을 어깨에서 시작한다. 눈을 뜨면 어깨로 먼저 손이 간다. 밤새 눌려있었으니, 주무르고 풀어줘야 한다.
‘내 잘못으로 네가 고생한다. 고맙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살아있는 자는 움직여야 한다. 쉽게 말하면 몸을 움직이는 일이 운동이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각 부분을 골고루 움직여주어야 그게 진정한 운동이 아닐까. ‘움직여라, 그러면 존재할 것이니라.’ 내가 어깨에서 배운 교훈이다. 요즘은 어깨를 통해서 마음에 묻고 있다. 마음에는 굳은 곳이 없느냐고.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없을 턱이 있겠는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문진을 해봤다. 마음 깊은 곳까지 건드리며 진맥도 해봤다. 한두 곳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묻어두고 있는 서운함도 있다. 가시지 않은 미움도 있다. 편견이나 선입견의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편향된 마음의 경직성 때문이 아닐까.
어깨의 굳음을 풀어주듯이 마음의 경직성도 유연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깨는 운동으로 다스리면 된다. 그렇다면 굳어 있는 마음을 풀어주는 처방은 무엇일까. 아마 그 해답도 내 안에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부채를 말끔히 떨어내야 한다. 마음의 돌덩이도 들어내야 한다. 오십견에서 한 수 배운 지혜를 당장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것이 내 몸과 마음에 대한 예의일 성싶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고 하지 않았는가.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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