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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나들이보고서

세걸산 등산, 덤으로 문화답사까지

 

   세걸산 등산, 덤으로 문화답사까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2013년 4월 12일, 팔성단(八姓團) 일행의 세걸산 등산길의 날씨가 그러했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쌀쌀한 날씨에 꽃망울조차 움츠리던 영하의 아침, 정읍에서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에 등산 기점인 남원시 운봉면 소재 전북학생교육원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이곳 전북학생교육원에 근무했던 동료 덕택으로 뜨끈한 차에 선물까지 받은 일행은 다시 힘을 얻어 등산길에 올랐습니다. 곧바로 출발 지점의 인증 샷을 하려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어젯밤에 빵빵하게 충전시켜둔 배터리를 두고 왔으니,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세걸산 정상을 향한 팔성단 일행의 첫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등산로는 비교적 평탄하여 거칠 것 없는 시작이었습니다. 올라갈수록 등산로의 경사가 조금씩 급해지긴 했으나 그런대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러나 명산 지리산의 한 봉우리로서의 위용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 덜 녹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뭇가지와 어울리며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보송보송한 길이 있는가 하면 눈 쌓인 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금방 녹은 듯 질퍽거리는 길이 나타나 발걸음을 더디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람이 불지 않아 일행의 진로를 가로막지는 못했습니다.

 진달래가 꽃망울을 키워가며 계절과 보조를 맞추려 애쓰고 있지만, 봄답지 은 기온 때문에 터덕거리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세동치로 향하는 길을 잠시 멈추고 옆길로 50여 미터 내려가니, 이름도 특이한 변강쇠와 옹녀 약수터가 잡목과 바위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무슨 효험이라도 기대하듯, 너털웃음까지 섞어가며 한 바가지씩 마신 후. 가뿐한 걸음으로 단박에 세동치에 이르렀습니다.

 

 내친 김에 20여분을 더 오르니, 이날의 목적지인 세걸산 정상이 나타났습니다. 학생교육원을 출발한지 1시간 반 만입니다.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바래봉을 비롯한 높고 낮은 지리산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작년 5월에 등정했던 내 생애 최고봉인 해발 1915미터의 천왕봉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리산 산줄기를 바라보며 즐기는 정상에서의 점심은 꿀맛이었습니다. 때맞춰 까마귀 네댓 마리가 우리 위를 뱅뱅 돌았습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밥 한 알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웠습니다. 한참 동안 머리 위를 돌며 원망스러운 듯 깍깍 댔습니다.

 처음 출발한 자리로 내려오는 하산 길은 단 한 번의 쉼도 없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동료의 제안으로 귀가 길에 운봉읍 상산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 숲에 들렀습니다. 나는 이처럼 연륜이 배어 있는 소나무 무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땅에 닿을 듯 요리조리 구부러져 있는 모양새와 울창하고 건강한 가지들은 기나긴 세월을 그대로 간작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소나무의 노익장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내친김에 가까이 있는 황산대첩비지를 찾아갔습니다. 이곳은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는 곳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선조 때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일본이 이 비를 파손했다 하니, 그 악랄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바로 이웃 비전 마을에 자리잡은 국창 박초월과 그의 스승 송흥록의 생가에서 울려나오는 판소리 한마당으로 등산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등산 후에 들른 세 곳은 비록 덤이었지만, 뜻밖에 얻은 옹골찬 수확이었습니다.     - 2013. 4.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