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의 ‘88세 미수연(米壽宴)’
1925년 여름에 태어나시어 현재 여든여덟. 일제강점기, 해방, 6.25 등 현대 한국의 암울한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심.
열아홉에 결혼, 스물 둘에 나를 낳으신 것을 시작으로 슬하에 5남매를 두심.
1992년 남편을 먼저 보내고 20여 년 동안 홀로 사시면서 자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심.
‘여든여덟, 미수(米壽)’를 맞으신 엄니가 걸어오신 길입니다.
자식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여 미수연(米壽宴)이란 이름의 조촐한 축하연을 가졌습니다.
생애에 견주면 비할 수 없이 작지만 나름 뜻 깊은…….
비슷한 연세이신 분들은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니는 일제 치하와 6.25 전쟁을 겪는 동안 가난이라는 멍에와 가슴 아픈 탄식을 숙명처럼 지니고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자식의 성장을 보면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엄니는 여든여덟이라는 연세에도 북구하고 연하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십니다.
지금껏 엄니 주변에 사람이 따르는 것은 착한 심성과 넘치는 인정 때문l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엄니가 매일 들르는 곳이 있는데, 집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작은 농장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농장엔 갖은 채소를 비롯한 농작물들이 쉴 새 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엄니 건강의 상징이자, 자식들의 먹거리 제공터입니다. 엄니의 밝은 표정, 반듯한 허리…….
엄니는 이 농장을 통해 본인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의 돌봄보다 몇 배 큰 엄니의 자산이자 지혜입니다. 엄니는 그런 분입니다.
엄니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십니다. 한 마디로 소리 없이 강하신 분입니다.
자식들에게 대한 싫은 내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전화가 뜸하다 싶으면, 먼저 걸어오십니다.
“뭔 일 있는지 알았다. 아무 일 없으면 됐다.” 이게 전부입니다.
엄니의 자식 사랑에 비해, 자식들의 효도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이날의 ‘미수연’은 한나절을 즐기는 그런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엄니 때문에 행복한 자식들의 기쁨과 살아계시는 동안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이 함께 다가선 시간이었습니다.
십여 년 후의 건강한 백수연(白壽宴)을 그려 보면서……
- 2012 . 7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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