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울음소리, 발길을 붙잡다.
초여름의 저녁 산책길엔 가뿐한 차림의 건강한 사람들로 붐빕니다.
들과 산과 물이 어우러진 가운데로 시원스럽게 뻗은 길입니다.
이 길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결이 동행하며 심신을 상큼하게 적셔줍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돌리면 부드럽게 이어진 산등성이가 어스름 속에서도 손에 닿을 듯 다가섭니다.
물을 그득 담은 길 옆 논엔 아파트 불빛이 촘촘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모내기를 하게 되면 제법 논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겠지만,
아직은 숨을 고르는 듯 여유롭고 편안해 보입니다. 거기에 정겨운 소리까지 만날 수 있으니 귀까지 즐겁습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니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이내 귀에 가득 찹니다.
모내기 준비를 위해 물을 그득 담아놓은 논에서 개구리들이 미리 한판을 벌이고 있는 가 봅니다.
그들만의 잔치 마당엔 온통 개구리들 소리뿐입니다. 정겹고 반가운 소리입니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나도 덩달아 동요 한 구절을 중얼거려보지만, 이내 그들만의 합창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말이 노래지 크기도 높낮이도 제각각인데도 그리 듣기 싫지는 않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지나는 길에 헛기침을 던져 봅니다.
예전처럼 일제히 멈춰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예민한 몇몇 놈들만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이미 소음에 익숙해진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씁쓸한 기분이 스쳐갑니다.
어릴 때 듣던 개구리 울음소리하고는 그 크기나 강도가 사뭇 다릅니다. 왠지 힘이 부치는 듯 들립니다.
개구리의 개체수가 예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체력이 약해진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염된 환경이 개구리를 위축시킨 것이기 때문이리라.
어릴 적 이맘때쯤 방문을 열면, 들려오는 건 텃논에서 내지르는 개구리 울음소리뿐이었습니다.
밤이 깊어서야 사그라질 정도로 지치지도 않고 요란스러웠습니다.
운 나쁘게 마른 땅을 떠돌다 탈진한 개구리는 아이들이 갈긴 오줌 덕분에 금세 생기를 되찾기도 했습니다.
논두렁을 걷다보면 발에 차이기도 하고, 미적지근한 뭔가를 뿌리며 물속으로 도망치는 놈들도 개구리였습니다.
이렇듯 그 시절 개구리는 자연의 일부로 아이들과 공존했었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는 생명의 소리이며 논이 건강하다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어미로부터 세상에 나온 알이 올챙이가 되고, 그 올챙이가 개구리로 성장할 때까지
갖은 역경을 견디며 생사를 넘나들었을 것입니다.
요즘 개구리의 생존 환경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심은 모가 논을 꽉 채우고,
그들이 자라서 벼가 될 때까지 개구리들이 탈 없이 잘 견뎌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들만의 청아하고 시끌벅적한 울음소리를 여름 내내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 2012. 5.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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