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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사는이야기

초겨울나무는 비우고도 짱짱합니다. 

 초겨울나무는 비우고도 짱짱합니다.

 

요즘 가을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다가 뒷걸음질까지 칠 때면 동행자들도 헷갈리는지 키를 키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꽃을 피우기까지 합니다.

기상관측 이래 11월 하순 역대 최고 기온이라 하니,

계절 바뀜의 시점이 자못 혼란스럽기조차 합니다.

2050년엔‘대한민국 아열대 기후’라는 보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계절의 흐름이 흐트러지면 자연의 생태는 물론 사람들의 생활 모습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날씨를 보며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새삼 실감나게 다가섭니다.

“날이 이러면 없는 사람 살기는 좋지만, 따술 때는 따숴야 하고, 출 때는 추워야 하는 건디…….”

 

‘그래도 12월인데……’하는 기대로 어딘가에 와있을 초겨울을 만나러 내장산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아직 떠나지 못한 건지 다시 되돌아온 건지 모를 파릇파릇한 잡초들이 발밑에 밟히기도 합니다.

감나무엔 빨간 감들이 아직도 빼곡히 매달려 있습니다.

까치들은 자기 밥을 지금껏 내버려둔 채 도무지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영악한 새들은 날씨가 이러하니 아직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가 봅니다.

예년 이맘때면 겨우 헤아릴 정도의 감들만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썰렁한 하늘을 마주보고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오르니, 골짜기 건너편의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빨간 단풍이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습니다.

독야홍홍(獨也紅紅)한 자태가 눈이 부셔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합니다.

만산홍엽의 시절엔 눈길 한번 받지 못했을 터이지만,

늦게나마 만추의 운치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단풍 잎새는 아직껏 떠나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계절은 때가 좀 늦고 이름이 있을 따름이지,

바뀜이라는 자연의 순리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이곳 산 속 대부분의 나무들은 밖으로 버릴 건 버리고,

안으로 채울 건 채운 상태로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잎을 완전히 떨어낸 나무들은 썰렁하기보다 오히려 짱짱한 자태가 당당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잎을 떨어내어 몸집을 가볍게 함으로써 비축된 내공의 힘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만의 겨울 생존법은 인간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워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초겨울 숲 속을 거닐며 맨몸으로 끄떡없이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때로는 숙연해지기조차 합니다.

초겨울 나무들은 오늘도 내년 봄을 위한 정중동(靜中動)의 의연함으로, 쉬는 듯 움직이고 있습니다.

                                                                   - 2011. 12.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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