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뱀사골의 가을 이야기
지난 10월 26일,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 뱀사골에 들렀습니다.
젊은 시절 한여름에 친구들과 어울려 이곳 계곡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산도 계곡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풍경은 전혀 딴 모습이었습니다.
계절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바싹 마른 채 바위와 돌들만이 가을볕에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한여름의 시원스런 물소리와 피서객들로 북적이던 모습이 잔상처럼 스쳐갑니다.
온 산은 완연한 가을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화려한 오색 단풍은 아니지만 우람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줄기마다 노란색과 갈색으로 치장했으며,
드문드문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나보라는 듯 손을 내밀었습니다.
뱀사골 마지막 동네인 와운마을엔 천연기념물인 ‘와운천년송’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며 떡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 소나무와 마을의 중간쯤에 마련된 쉼터에는 노인 한 분이 말없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굽은 등 위에는 세월의 무게와 고독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천년송과 노인은 뱀사골의 이야기들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두어 시간 동안의 산행을 마친 우리는 늦은 점심 메뉴로 흑돼지 고기를 실컷 구워 먹었습니다.
구수한 고기 맛과 토속적인 반찬의 감칠맛은 연거푸 ‘추가’를 외치게 했습니다.
식당 안의 탁자 위에는 큼직한 빨간 색 가을이 먼저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처럼 크고 화려한 호박은 처음 봤다는 말에 주인마님은 직접 기른 약호박이라며 으스댔습니다.
나는 한 아름도 넘는 그놈을 힘들게 부둥켜안고 ‘인증샷’을 해두었습니다.
이날 뱀사골의 대미는 빨간 약호박이 장식했습니다.
- 2011. 10.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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