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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요즘생각

착한 화장실 이야기

         - 착한 화장실 이야기 - 

                     심신을 가볍게 해주는 공간으로 변신 중


  아마 화장실처럼 입에 올리기조차 머뭇거렸던 천덕꾸러기에서 깔끔한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 것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장실은 최근 그 위상이 크게 상승되면서 문화라는 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식사 때엔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것은, 아마 화장실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이 잠재되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땐 이랬었지요. -

  지금은 화장실이라 불리는 게 보통이지만 과거에는 측간, 변소 등으로 부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우리 또래야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 측간에 대한 나의 경험은 그리 유쾌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집의 마당 건너편에 허름한 구조물 하나가 내팽개쳐진 모양으로 있었는데, 그 안에 잿간과 측간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측간은 어느 집이나 대체로 그런 구조였으며, 흔히 '찌깐'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이름만으로도 지저분하여 악취가 풍기는 듯했습니다.

  어릴 때 비교적 겁이 많았던 나는 고약한 냄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밤이면 측간에서 또망귀신이 나온다 하여 그 부근에 얼씬거리기조차 싫었습니다. 어른들은 마치 모든 사물에 귀신이라도 붙여놓은 듯 귀신타령을 하며 아이들에게 겁을 잔뜩 먹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우리들을 놀리는 재미도 즐기며, 한편으로는 밤에 나돌아 다니지 말라는 경고의 속셈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망귀신, 달걀귀신, 시암귀신, 마당귀신, 물귀신, 총각귀신, 처녀귀신, 애기귀신 등 하고 많은 귀신 중에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귀신은 또망귀신이었습니다. 생전 보지도 못한 또망귀신의 존재를 철썩 같이 믿었던 나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어느 일보다 심란했습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은 마당가의 두엄자리에 대충 일을 보고만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배탈이라도 나서 측간에 여러 번 드나들어야 할 경우엔 어머니까지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측간 앞에서 망을 봐주시거나 방문을 열어놓아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으니까요.  


  학교에 들어가니 측간보다는 좀 고급스런 이름인 변소라 불렸습니다. 학교 변소에도 하얀 옷을 걸친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실제로 본 친구는 없었습니다. 머리가 굵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귀신에 대한 허구를 알게 되고 점차 두려움의 옷도 벗게 되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의 변소 청소는 벌의 수단이기도 했으며, 특히 악취를 뒤집어쓰며 치러야 하는 낙서 지우기가 가장 힘겨운 일중의 하나였습니다. 오죽하면 어린이회 시간에 정하는 주훈으로

 '변소에 낙서를 하지 말자.'가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공중변소를 통해서 더욱 다양한 낙서를 접하다 보니, 낙서 없는 변소는 오히려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낙서를 하는 사람들이 그 순간 짓고 있을 표정이 가끔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지저분함과 귀신과 낙서가 떠오르던 측간과 변소에 비하면, 오늘의 화장실은 가히 혁명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뒤보는 일 외에 화장, 세수, 휴식, 좋은 글귀나 그림 감상 등의 공간으로 그 신분이 높아지면서, 화장실 문화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 지금은 변신 중입니다. -

  아직도 깔끔하지 못한 화장실이 적지 않지만, 기분 좋은 화장실이 유달리 돋보이는 요즘입니다.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들여다보면 청결은 기본이고 갖가지 치장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뒤보는 장소와 향기로운 글귀의 공존'도 사람들을 흐뭇하게 합니다.

  때로는 화장실의 품격을 한결 높여주고 있는 동서양의 좋은 글귀들을 모셔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느끼곤 합니다.

눈앞에 자리 잡고 있는 보석 같은 글귀를 마주하는 순간만은 차마 몹쓸 생각을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화장실은 몸만 가벼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여유롭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와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글귀입니다. 사람 사는 일과 뒤보는 일을 유연하게 연결시킨 탁월한 선택으로 참 좋은 글귀입니다.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깨끗하게 사용합시다.'처럼 경직되고 규제적인 표현보다 몇 배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버릴 것은 상쾌하게 버리는 가운데, 문화를 만나고 사람 사는 일도 생각할 수 있으니, 이를 착한 화장실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사람들로부터 대접받지 못하는 공간들이 있다면, 이 착한 화장실처럼 변신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200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