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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추억/*********후반기

교정에 봄이 들어서던 날

               교정에 봄이 들어서던 날


3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봄기운이 서서히 감돌더니, 학교 뜰에도 봄의 징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근년에는 계절의 바턴 터치가 들쑥날쑥 한다더니, 이번 봄은 예년보다 좀 서두르는 것 같습니다.

  운동장의 흙이 아직도 바슬바슬한 걸 보면, 가뭄 때문에 많이 부대끼는 모양입니다.

그런 중에도 봄의 전령사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우리학교에 봄소식을 안고 온 것들 중에서 서편 언덕에 서있는 산수유나무가 선두 주자입니다.

며칠 전부터 앙증맞은 꽃망울들이 다닥다닥 붙어 노란 몸을 서로 부비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하던 사이에 활짝 펴서 제법 봄꽃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새빨갛고 토실토실한 열매들의 꿈이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옹기종기 들러 앉아 조잘대며 웃고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도 꽃들 안에 섞여 있습니다. 

  마주보고 서 있는 목련나무 두 그루도 뒤질세라 꽃봉오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목련나무는 마치 나이든 부부처럼 든든하게 서서 산수유나무를 지긋이 바라보는 형상입니다.   

산수유 꽃망울이 깔깔대는 아이들이라면, 목련의 꽃봉오리는 믿음직스럽고 연륜이 쌓인 어른처럼 보입니다.

  정원수 사이사이에 보랏빛 제비꽃들이 수줍게 앉아서 나도 한몫 끼고 싶다는 듯 여린 손짓을 합니다.

듬성듬성 노란 꽃을 피운 민들레도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이들은 곧장 시들어버려 아쉽기는 하지만, 또 다른 포기에서 연이어 피어나기 때문에 잔정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어디선가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어느 틈에 1학년 아이들도 달려왔습니다.

나비는 조금은 때 이른 나들이인 탓인지 겸연쩍은 날갯짓을 하지만, 아이들은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모습입니다.

나비가 먼저 나와 아이들을 가다렸고, 때마침 봄을 찾아 나선 아이들의 눈에 용케도 띤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소통하려면 요모조모 재면서 한동안 뜸을 들이는 게 보통인데,

친구라 여기면 금세 가까워져 함께 나돌아 다니는 게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이 별생각 없이 지나쳐버리는 하찮은 미물도 아이들의 맑은 눈에는 정겨운 친구로 보이는 거겠지요.


  교실 앞 언덕을 온통 뒤덮고 있는 철쭉나무는 지난 가을 이후의 가뭄에 부대껴서인지 봄맞이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런 중에도 간간이 물이 오르는 기운이 느껴지며, 가지 끝에서는 작은 꽃망울들이 올망졸망 머리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작년 여름에 전교생이 품에 안겨도 너끈할 정도로 풍성했던 등나무도 듬성듬성 이파리들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보랏빛 꽃들이 치렁치렁 매달렸던 등나무 그늘이 떠오릅니다. 

그 아래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재잘거리던 모습도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채소들이 자랄 십여 평 남짓한 실습지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3월말쯤이면 뿌리려고 씨앗을 골고루 사다 놓았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풀들이 주인노릇을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4월부터는 상추를 비롯하여 쑥갓, 치커리, 케일, 아욱 등이 이곳을 채워 갈 것입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물도 주고 풀도 뽑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합니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쑥들이 향긋한 봄 내음을 풍기고 있습니다.

지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도 그 뿌리를 온전하게 보존해온 게 참 대견스럽습니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장 선생은 어느 틈에 그리 많이 캤는지,

풋풋한 쑥이 그득한 바구니를 보듬고 봄 처녀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게 나타났습니다.

비닐봉지에 몇 줌씩 나누어 담는 장 선생의 야무진 손놀림은 빠르고도 공평했습니다.

봉지엔 반만 담고 나머지 반을 정성으로 채우며 교직원 수만큼 분배했습니다.

저녁상에 차려질 향긋한 쑥국을 생각하니 입안에서는 벌써 봄의 향기가 감돕니다.

  수업이 끝나고 몰려나오는 아이들의 뜀박질로 메말랐던 운동장도 금세 생기가 돕니다.

한동안 방방 뛰어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빙 둘러앉아 눈을 모으는 걸 보니, 무언가 봄의 징표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학교의 곳곳에는 봄이 스며들고, 그 봄이 아이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학교를 찾은 봄의 전령들은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있지만, 게으름을 부리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듯 순서에 따라 오는 이유는 아마 한꺼번에 몰려오면 사람들의 눈에 띠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한둘씩 다녀가는 것이 우리학교 봄에 관한 순리이고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학교의 봄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겹고 아기자기해서 참 좋습니다.

이 봄은 아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희망을 선물하고 갈 것입니다.

 '봄은 긴긴 겨울이 주먹 속에 움켜쥐고 있는 희망이다.'라는 말처럼…….


≡ 2009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