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단의 추억/*********후반기

친목배구 3락(三樂)

        

                           동아리 배구 3락(三樂)


 교직생활 40여 년 동안의 학교문화에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교직원간의 친목 운동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양새는 다소 변천되어 왔으나,

운동을 통해 다져진 친목을 교육의 에너지로 삼자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랜 동안 지속되어온 친목배구가 요즘은 그 시공(時空)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건강이라는 덕목이 중요시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요즘 매주 화요일이면 퇴근 후에 체육관을 찾는 것이 주요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교직 동료들과 3년 전에 배구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매주 한 차례씩 체육관에 모여 운동을 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습니다.

  5시가 가까워지면 체육복 가방을 들쳐 맨 회원들이 하나 둘씩 체육관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누구 하나 얼굴 찌푸리는 사람이 없이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게임이 이루어질 정도의 성원이 될 때까지는 준비운동을 하는 그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팀은 연초에 이미 구성되어 있어 왈가왈부할 일이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공을 어느 팀이 하느냐, 네트의 높이가 맞느냐,

공에 바람이 제대로 들어 있느냐 등으로 공연한 시비를 걸어보기도 합니다.

이는 기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즐겁게 운동하자는 전주곡에 가깝습니다.

왜 구태여 모자를 쓰고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느냐고 불평하는 것도

별 감정 없이 의례적으로 내던지는 우스개 말 중의 하나입니다.


  배구라 하면 모두들 3,40년씩 해온 터라 기본기도 잘 다듬어 있어 제법 하는 편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소위 '빠꾸'라고 일컫는 후위 중에 한 자리를 고수하다 보니, 어느덧 그 자리의 붙박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회원들은 가끔 자리를 바꾸기도 하지만, 나는 이 자리가 좋으며 다른 회원도 감히 내 자리를 맡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내 자리에 무슨 낙인을 찍어놓은 것도 아닌데, 나를 화석처럼 박아놓으려나 보다고 불평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회원은 서브를 넣기 전에 웃기는 몸짓과 말투로 상대편을 이완시키며

리시브에 혼란을 주려 하지만, 때론 자기가 함정에 빠져 서브미스를 범하기도 합니다.

  게임이 한창 팽팽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우격다짐이 일어났습니다.

넷 터치냐 아니냐로 티격태격하더니, 성질 급한 두 회원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상황을 재연하면서까지 자기편의 입장을 설명하며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지만, 상대는 요지부동입니다.

  진실에 관계없이 너나없이 자기 편 역성들기에 나서는 상황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자칭 명심판이 나서 어정쩡한 판단의 대명사인 '노플레이'를 선언하여 장내를 평정해버립니다.

  어떤 때는 누가 봐도 분명한 상황인데도 애교 섞인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심판의 경고에 뒤이어 심지어는 자기편의 질타를 받고나서야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마는 장면도 연출됩니다.

잠시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각본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며 다시 배구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보통입니다.

  운동하듯 놀 듯, 이게 우리들의 즐기는 배구입니다.


  되돌아보면, 학교의 친목배구의 모습도 많이 변한 것 같아 격세지감이 듭니다.

학교에 특별한 업무가 생기면 가끔 건너뛰기도 하지만,

매주 한 차례씩 실시하던 예전의 친목배구는 학교에서 거의 유일한 여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코트에서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벌이는 친목배구는 그야말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공을 정교하게 올리는 사람, 올라간 공을 내리꽂는 사람, 땅바닥에 미끄러지며 공을 받아 올리는 사람,

공이 땅에 떨어진 뒤에서야 두 손을 올리는 사람, 손이 닿았다 하면 공이 코트 밖으로 튕겨나가는 사람…….

배구 기능도 천차만별, 폼도 가지가지였습니다.

  코트 안에서 뛰지 않는 교직원들도 신바람 나는 응원으로 한몫 거들었습니다.

한 게임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운동 중의 웃음과 억지 부리기는 마치 깨소금과 고춧가루 같은 양념처럼 늘 있어 왔습니다.

  배구에 흠뻑 빠지다 보면 해가 서산에 넘어가고 땅거미가 지고 나서도 이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배구공이 울타리 너머 인근 논 속으로 굴러가 행방불명이 되면 그때서야 네트를 걷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은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교직원 수가 감소된 것은 차치하고라도,

여직원수가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남직원수가 적어져 배구팀조차 꾸릴 수 없는 학교가 허다합니다.

체육관이 있는 학교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운동장에서 햇볕에 그을리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배구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40 여 년 동안 즐기던 친목배구는 아직도 즐거움과 여유를 주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모습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많이 변했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 차례에 불과하지만 나는 요즘 '건사모 동아리 배구'에 푹 빠져,

이른바 '배구삼락(三樂)'을 즐기는 재미가 여간 아닙니다.

  운동을 하여 건강해지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웃고 즐김으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세상과 학교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소통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입니다.

그러니 배구삼락(三樂)이오, 일석삼조(一石三鳥)라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배구를 끝마치고 체육관을 나오는 모습들이 한결같이 밝은 것만 보아도, '배구삼락(三樂)'이라는 말은

내가 만든 사자성어(四字成語) 중에서 꽤 쓸만한 것 같습니다.


                                                                                                        ≡ 200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