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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요즘생각

사람 노릇은 여전히 미완성

   

                          '사람 노릇'은 여전히 미완성


  조선 중기의 문인 성여신은「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면 집이 광채가 나고,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집이 잡초로 덮인다.」라는 말로 아들을 훈계했다 합니다.

  사람이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맡은 바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해독을 끼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 노릇을 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원초적 질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사람 노릇 못한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이 말처럼 치명적인 평판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 노릇하며 산다'는 말을 들었다면, 이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노릇을 하며 사는 것으로 인정받았으니,

그리 부끄러운 삶은 아니라며 자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당신은 사람 노릇하면서 살아왔나요?'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아 얼버무리거나 궁색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사람 노릇인데,

그만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일이 사람 노릇인 것 같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 태어난 이래 자의든 타의든 여러 가지 역할을 부여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식 노릇,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 어른 노릇, 선생 노릇 등을 가장 크고 무거운 일로 알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어느 노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습니다.

자식으로서 모름지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거늘 항상 모자람으로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결혼을 통해서 주어진 남편 노릇 역시 부끄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자식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정성껏 뒷바라지를 해야 할 아버지 노릇 또한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어른 노릇 역시 본을 보이기보다 회피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선생 노릇을 나의 천직으로 삼으며 아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보다 굳이 머리 속만 채우려들지 않았는지 후회가 많습니다.


  현대는 날마다 쏟아내는 새로운 물건들로 생활은 윤택해지고 먹을거리도 많아졌는데,

사람 사는 맛이 예전 같지 않아 어딘가 허전하다고들 합니다.

그런 가운데 사람 노릇하려니 참으로 힘들다며 아우성입니다.

인정은 메말라 가는데 챙겨야 할 일은 많아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제 잘못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사람 노릇 못한 것을 변명하기도 합니다.

  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이롭게 하는 데 그 뜻이 있을 터인데,

건 안중에 없고 너나없이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갖은 수사를 들이댑니다.

기업이 잘 안 돌아가면 경영자는 노동자를 탓하고, 노동자는 경영자를 탓합니다.

공교육이 무너진 것은 정부의 교육 정책 탓인지, 학교의 보수적 타성 때문인지,

학부모의 이해 부족 탓인지, 그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서양의 격언을 빌리자면,

 '극단적인 이기심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남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모든 사회적 개인적 갈등 현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저변에는 배타적 이기심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천에는 자신의 '노릇'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탓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우선 기본으로 돌아가 잠자는 '미덕(美德)'을 깨우는 일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슴 속에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미덕'이라는 인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인정(人情), 겸손, 상부상조, 나눔 등은 저력이자,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미덕들이고 생각합니다.

  뭔가 풀리지 않고 혼돈스러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우리의 미덕을 잠 깨우자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미덕을 모아보면 결국은 사람 노릇으로 귀결됩니다.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람 노릇을 하자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전인수(我田引水)'를 폐기 처분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 서는 일입니다.

  제 논에만 넘실대도록 물을 채우고, 이웃 논이 메마르는 걸 바라보며 흐뭇해한다면,

이는 결코 사람 노릇이 아닐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그 농부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는 의외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내 눈에 거슬릴 때,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정도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둔다면, 미워할 일도 싸울 일도 반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제 나라의 경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나라를 바로 다스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 말로

짧고도 명쾌하게 대답했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우면 된다.'는 이 말은, 

 기본과 노릇에 충실 하라는 뜻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위인들의 자서전에도 평생 동안 사람 노릇 잘 하며 살아왔노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사람 노릇하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아마 사람 노릇은 항상 미완성이고,

그것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또한 사람 노릇이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사는 동안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명제일까요?


                                                                                                                      ≡ 200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