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물건들’이 이젠 나를 부리려 합니다.
정보화 사회가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利器)는 현대인들에게 생활의 편의를 구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진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자고 나면 한 단계씩 나아간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정보화 기기(機器)를 가까이 두고 다루다 보니, 이젠 그들을 떠난 생활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손가락의 단순 동작으로 조정되는 컴퓨터 마우스, 텔레비전 리모컨, 휴대폰 등 3종 세트는
나에겐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 세 가지 물건들의 공통점은 일단 손아귀에 들어가면,
그 기능을 손쉽게 발휘하여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 간편함과 놀라운 기능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짧아지는 동선(動線)은 게으름으로 이어지고,
요즘은 이들이 오히려 나를 부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난 이들을 '게으른 물건'이라 이름 붙였는데, 실은 ‘나를 게으르게 하는 물건’이라는 속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나 몸이 피곤하면 만사를 내려놓고 하루쯤 쉬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나는 이 경우 어김없이 세 가지의 게으른 물건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휴식 방법은 부끄럽지만 나의 몹쓸 버릇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퇴근 후에 특별히 외출할 일도 없어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소파에 길게 드러누우니 몸도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어느 샌가 내 손아귀에는 텔레비전 리모컨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조정하다 보니, 마침 프로배구 경기 중계가 있어 채널을 고정시키고 여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슬며시 한마디 건넸습니다.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요. 천변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심이 어떨는지요."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나만의 어설픈 논리로 합리화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푹 퍼져서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동으로 채널을 돌리던 시절엔 이렇게 편안하게 누운 채로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렇듯 늘어진 것은 게으른 리모컨 탓이로다.'
자신을 탓하는 대신 무심한 물건만 원망하다니, 참으로 황당한 퍼 넘기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스포츠 중계가 재미있다 해도, 편안하게 누워 있는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잠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머리 맡에는 또 하나의 게으른 물건인 휴대폰이 놓여 있습니다.
이 물건 역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위해 언제나 지근거리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습관이 되어 휴대폰이 옆에 없으면 불안하고, 출근이나 외출할 때도 마지막에 반드시 챙기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입니다.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네 살배기 외손자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출근하기 위해 가방과 자동차 키를 챙겨들고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할아버지, 휴대폰!"
하며, 외손자가 안방에서 휴대폰을 들고 뛰어 나왔습니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철없는 외손자도 휴대폰이 나의 필수품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휴대폰은 앉아서도 누워서도 심지어는 걸으면서도 통화를 할 수 있으니,
예전처럼 벨이 울리면 수화기를 들기 위해 뛰어가는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다 보니 손 안의 휴대폰도 나를 게으르게 하는 물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난 뒤 다시 텔레비전 리모컨을 작동해보니, 그 사이에 배구 경기 중계가 끝났습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별 재미가 없다싶어 컴퓨터로 다가가 마우스를 움켜쥐었습니다.
물론 컴퓨터로 당장 해결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동안 인터넷 속에 생성된 뉴스거리는 없는지,
내가 관리하는 카페와 개인 블로그에는 누가 다녀갔는지, 그게 조금 궁금했을 뿐입니다.
컴퓨터를 조정하는 마우스라는 것도 손아귀에 쏙 들어가는 물건으로, 검지만 가볍게 톡톡 건드리면 세상이 열립니다.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손가락 하나의 게으른 동작으로 이처럼 많은 것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함께 지내는 동안 마우스 역시 나에게 또 하나의 게으른 물건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요리조리 더듬다 보니, 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나의 게으른 한나절은 이렇게 게으른 물건들과 더불어 덧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늘어진 휴식을 취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거뜬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눈은 침침해지고 어깨는 뻐근했습니다.
게으른 물건들과 함께 하는 내 식의 휴식은 몸을 가볍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머리 속도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내가 필요에 의해 그들을 조정했다기보다 그들에게 내가 끌려 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무심코 손을 내밀어 간편함을 즐기며 게으름에 빠지다 보면.
이들 3종 세트가 애물(愛物)에서 애물로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화 기기(機器)의 그림자가 더 짙어지기 전에,
게으름이 타성이 되기 전에 이들 3종 세트를 경계 또 경계하여 내 몹쓸 습관을 고쳐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헤어지기는 이미 어려운 처지가 되었으니,
'적당한 거리'의 확보가 상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거리가 어는 정도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나에게 그 '적당한 거리'의 유지를 위한 열쇠는 '내 의지'안에 들어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 2009년 ≡
' 살아온이야기 > *********은백빛'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손자 눈높이 맞추기 (0) | 2009.02.08 |
---|---|
등하굣길을 다시 가다. (0) | 2009.01.17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전거 (0) | 2008.12.26 |
배양구지 그리고 황새다리 (0) | 2008.12.26 |
어설픈 수박겉핧기 三題 (0) | 2008.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