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수박 겉핥기’삼제(三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일에 쫓기며 바쁘게 살다보니 뒤돌아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아쉬워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야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며 자기 탓과 세상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
나 역시 못다 한 숙제 보따리를 이제야 들추어보면서,
흘러간 세월과 미적지근한 내 탓을 하는 그런 사람들의 부류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특히 나의 게으름으로 젊은 시절에 변죽만 울리다가 슬그머니 놓아버린 일들 중,
다음 세 가지는 아직도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첫째는 잘 하는 운동 하나 갖는 것이오, 둘째는 연주할 줄 아는 악기 하나 갖는 것이오,
셋째는 화초를 가꾸어 꽃을 보는 재주를 갖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젊었을 때 좀더 야무지게 붙들었으면, 인생의 후반기를 더욱 활기치고 윤택하게 가꿀 수 있을 터인데…….'
요즘 이런 생각이 가끔 들지만,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으며 과욕은 금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수박 겉핥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연유에서 출발합니다.
* 겉핥기 하나 *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잠시 권투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체육관을 다니며 권투를 좀 배웠다는 이웃 마을의 한 청년이 사범으로 나서
인근 학생들을 모아 권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샌드백에 펀치 볼 하나가 전부인 임시도장이 바로 우리 집(고모님 집) 마당에 마련된
덕분에 나도 덩달아 그 무리 속에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권투부원 중에 나이가 가장 어렸던 나는 귀여운 청강생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어설픈 권투 흉내를 냈습니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주먹으로 샌드백을 두들기다보니,
손등이 도톰해지면서 권투하는 사람들의 징표인 옹이도 생겼습니다.
두어 달이 지나고 나니 형들은 대련도 하고 실습도 나갔지만, 나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항상 열외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나의 주먹에도 알게 모르게 힘이 붙는 것 같고,
오만한 자신감으로 간간이 으스대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도 눈에 거슬렸던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외면했을 터인데,
그 동안 배운 권투 실력을 믿었던지 한판 붙어볼 요량으로 맞섰습니다.
그런데 한두 번 손을 허우적거렸을 뿐인데, 난 순식간에 얼굴에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 길로 선생님과 함께 병원으로 직행하여 서너 바늘을 꿰맸으니, 이는 내 어설픈 만용이 부른 결과였습니다.
그 뒤로 열악한 동네 권투도장은 있는 둥 없는 둥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나의 권투 겉핥기도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 겉핥기 둘 *
어린 시절 명절 때 큰집에 가면 멋쟁이로 소문난 사촌형이 동생들을 빙 들러 앉혀놓고 기타 솜씨를 자랑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 신기한 악기를 요리조리 매만지면서,
언젠가는 형처럼 기타를 걸쳐 매고 멋들어진 연주를 해보았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교직에 들어서자마자 내 또래인 조 선생이 들고 온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유달리 애착이 갔습니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조 선생이 교무실에서 연주해주던 유행가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나도 저런 악기 하나 쯤 폼 나게 연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친절한 조 선생은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내게 바이올린을 안겨주었습니다.
조 선생이 가르쳐주는 대로 자세를 잡고 줄을 문질러보았지만,
그때마다 나의 설익은 손놀림에 놀랐던지 바이올린은 비명을 절러댔습니다.
그러던 중 조 선생이 갑자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함께 떠나고 말았습니다.
* 겉핥기 셋 *
벌써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이자 동료교사인 송 선생은 텃밭에 장미를 가꾸며 제법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송 선생이 일손이 모자라 애를 태울 때면 몇몇 친구와 함께 장미 접붙이는 일을 거들곤 했습니다.
찔레나무를 대목 삼아 장미의 눈을 오려 접붙이기를 하면, 그게 자라서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장미 접붙이는 일을 돕다 보니, 어설프지만 기술이 어느 정도 손에 익게 되었습니다.
서당 개가 1년 만에 풍월을 읊은 격이었습니다.
그 해 가을엔 혼자 힘으로 찔레나무 씨앗을 채취하여 텃밭에 파종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손수 접붙이기를 시도한 끝에 예쁜 장미꽃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제법 장미농사꾼 흉내를 낸 샘이었습니다.
그 뒤로 두어 해 동안 비록 어설픈 기술이었지만, 우리 집 담장 밑은 빨간 장미꽃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결혼과 분가라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장미 가꾸기도 완전히 손을 놓게 되었으니까요.
이 일에 대해 이렇듯 겉핥기에 머물고 만 것도 당시의 내 생활환경 변화에서 기인한 것보다,
나의 느슨한 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의 어설픈 실험은 모두 나의 끈기 부족으로 인해 이렇듯 모두 겉핥기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못다 한 숙제는 내 관심사의 파일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것은 아닙니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마음이 여유롭고 심성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들 안에서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그렇게 다져진 그 상상력은 새로운 창의력의 에너지로 축적될 것입니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건강해 보이고 생기가 넘칩니다.
운동을 하고 있는 순간 그의 마음 안에는 스트레스가 있을 리 없으며,
부정과 갈등이 자리 잡을 공간 또한 없을 것입니다.
화초를 가꾸고 있는 사람은 기술과 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성이 더 큰 에너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식재부터 개화까지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악기 하나 쯤 다룰 줄 아는 사람, 운동 하나 쯤 할 줄 아는 사람,
화초 가꾸기를 잘 하는 사람이 지금도 부럽습니다.
그 동안 일을 핑계로 미적거렸으니, 퇴임하고 나면 세 가지 숙제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려볼까 합니다.
'문 선생 ! 좀 서툴러도 괜찮아.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거야.'
≡ 2009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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