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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은백빛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전거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전거

 

                                                                                                        2008년 가을 ≡                            

지난 가을, 내 생일 전날이었습니다. 퇴근 길에 휴대폰 벨이 울렸습니다.

 '어머니'라고 쓰인 걸 보니, 외출 중에 전화를 거신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이웃 마을에 있는 유창아파트에 혼자 살고 계십니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참 좋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씀 하시지만, 자식으로서 마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도 뵐 때마다 어머니의 밝고 건강한 모습에 시름이 덜 합니다.

평소에도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는 또렷하고 힘이 있지만,

오늘은 유달리 기분이 좋으신 듯하며 주위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도 함께 들렸습니다.

 "갱근아, 여그 학교 체육관인디, 니 생일 선물로 자전거 준비해놓았응게 낼 가져가거라. 알었지양?. 끊는다."

밑도 끝도 없이 생일 선물과 자전거라는 말씀에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전화가 끊겼습니다.

여든 넷 되신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생일 선물도 과분할 진데, 그것이 자전거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실 시각에 맞추어 전화를 걸었더니,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자전거 이야기를 귀에 담아 여기에 대충 옮겨 썼으나, 내 어설픈 표현력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까지는 담지 못했습니다.


이 날 인근 체육관에서 동민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과 함께 구경을 가셨습니다.

먹을거리와 구경거리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경품도 받을 수 있으니, 노인들에게는 꽤 괜찮은 하루 소일거리였겠지요.

요즘의 지역 행사는 시민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 외에, 지역 유지들이 스폰서 한 경품을 나누어 주는 것이 대세입니다.

어느 행사든 경품권 추첨은 행사 끝머리에 하는 것이 관례인데,

여기에는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붙잡아두려는 주최 측의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기다려주는 게 또한 보통사람들의 미덕이고 인심입니다.

어머니께서도 27이라는 숫자가 쓰인 경품권을 손에 꽉 쥐고 기다렸습니다.

추첨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에 진열된 물건들이 하나둘 주인을 찾아가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갔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조금씩 지쳐가는 가운데, 무대에는 제법 값이 나가는 경품 몇 개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께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27번 자전거 당첨되셨습니다. 나오십시오.”

 “나 여깄시오.”

어머니는 두 팔을 치켜 올리며, 앞으로 나가 번호표를 흔들었습니다.

여든 생애 처음으로 경품에 당첨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자전거를…….

함께 오신 아파트 노인정 친구들이(엄격히 말하면 어머니의 한참 연하입니다.)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휴대폰을 꺼내서 '1'을 길게 누르셨습니다.

그 순간 아들의 생일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그 자전거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전거가 된 것입니다.

세상살이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에 어머니를 따뜻하게 챙기지 못하는 나는, 이런 어머니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뒤로 나는 그 자전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자전거를 타고 나서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아들아, 건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