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롯가에선 무슨 일이
≡1957년 겨울≡
방문을 슬며시 열고 얼굴을 내밀어보니, 어젯밤 눈보라에 토방은 물론 마루 위까지 하얗게 뒤덮였습니다.
쌩 하며 지나가는 칼바람에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폭 들어가고 몸을 바짝 오므렸습니다.
오늘 같이 추운 날은 따뜻한 아랫목에 파묻혀 있으면 좋을 텐데, 학교 갈 일을 생각하니 심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싱건지 가닥을 넣고 끓인 된장국과 보리밥 몇 술로 배를 따끈하게 채운 뒤 학교 갈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어머니는 내복을 있는 대로 껴입히고 양말도 겹으로 신겨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외출할 때 쓰시는 머플러로 얼굴을 감싸고 나서야 발을 동동거리며 집을 나섰습니다.
변변한 장갑이나 외투조차 없던 시절이니, 이것저것 추위를 가릴 만한 것은 모두 찾아서 꽁꽁 싸매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 집에서 나오니 그 아이려니 짐작할 다름이지,
차림으로는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장한 아이들이 하나 둘 마을 어귀에 모였습니다.
동네 고샅을 벗어나 신작로에 나서니 칼날 같은 매서운 바람이 연신 내 온몸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저마다 부모가 챙겨준 방한차림으로 단단히 무장한 아이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입니다.
아버지 벙거지를 둘러쓴 아이, 할머니 목도리로 얼굴을 돌돌 말아 눈만 내놓은 아이 등…….
나는 그 중에서 토끼털 귀마개로 귀를 감싼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손끝이 아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는 듯한 등굣길의 추위에는
평소에 길들인 강단으로 맞서는 일 외에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니 각 교실의 연통에서는 다투듯 연기를 내뿜고, 매캐한 냄새가 코끝까지 와 닿습니다.
선생님이 미리 피워놓은 난로 덕분에 교실은 제법 훈훈해져 있었습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은 따갑지만 아이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난로 주변에 몰려듭니다.
나도 난로 곁으로 뽀짝거리며 손을 쑤욱 내밀었더니, 다소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땡땡 얼은 손을 녹이기 위해 한 뼘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보지만, 선생님의 호령에 멈칫 물러섭니다.
공부 시간이 가까워오자, 난롯불에 양말을 벗어 말리던 한 아이는
아직도 축축할 터인데 그냥 발에 끼우고 자리로 들어갑니다.
난로 위에서는 물 끓는 소리에 주전자 뚜껑의 딸각거리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어느 교실에서 고구마를 굽는 지, 구수한 냄새가 복도를 흘러 우리 교실까지 넘나듭니다.
휴식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우리 반 용이가 난로가로 뛰쳐나오더니,
어디에 숨겨왔는 지 고구마 네댓 개를 꺼내 난로 위에 쏟아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고구마를 손가락으로 꾹국 눌러보며 애착을 보이지만,
시작 종이 울리기 전까지 익히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행히 선생님의 배려로 고구마는 공부 시간 중에도 계속 난로 위를 지키며, 온 교실을 구수한 냄새로 채우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 특유의 냄새에 참지 못했던 지 한 놈을 골랐습니다.
적당히 태워져 껍질이 부풀어오른 그 놈 의허리를 분지르니, 김을 내뿜으며 누런 속살을 드러냅니다.
입 속엔 군침이 감돌았지만, 주인이 따로 있으니 논요기로 만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래도 며칠 후면 겨울방학이라는 기다림이 있기에 아이들은 버티며 공부 속으로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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