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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연둣빛

"꿩이 너를 잡겠다."

              "꿩이 너를 잡겠다."


                                                                                                                        ≡ 1959년 겨울 ≡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의 겨울엔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살을 에는 강추위가 계속되는 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해 겨울에도 사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내린 눈이 마을은 물론 온 산야를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그날도 하늘은 눈을 품고 있는 듯 묵직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나서 마당 한쪽에 밀어 붙여놓은 눈 더미가 작은 언덕을 이루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마을 청년들이 모정 앞에 쌓아놓은 짚단더미 주변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쌓인 눈 때문에 사흘 동안이나 굶은 꿩들이 이 때쯤이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마을 주위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마을 청년들은 눈 쌓인 겨울 날의 경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손에는 작대기가 하나씩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꿩과의 일전을 앞둔 임전 태세였습니다.

쫓기다 지친 꿩이 쌓인 눈 속에 머리를 박으면 마지막 타격을 가할 도구입니다.

 우리 또래들도 한 몫 끼어 볼 욕심으로 나서보지만,

건너 마을까지 뛰어서 오가야 하는 꿩몰이인지라 우리로서는 힘에 벅차며, 청년들이 끼어줄 리도 없습니다.

운 좋게 그 대열에 합류한다 해도 마지막 전리품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을 따라 뛰어다니다 지쳐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 유리한 우리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한 동안 몰리던 꿩이 힘이 소진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는다는 것쯤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대밭이나 솔밭 주변에 미리 진을 치고 기다리는 이유도 만일의 횡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옹기종기 쪼그리고 앉아있는 우리들을 보고 어른들이 놀리며 지나갔습니다.

 "이놈들아, 꿩이 너를 잡겠다."

 그때, 마을 앞 들판 위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꿩이야! 장끼다!”

 예닐곱 명의 청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소리를 치며 눈 덮인 밭을 가로질러 우르르 달려 나갔습니다.

나도 덩달아서 흥분이 된 나머지 벌떡 일어서서 뒤쳐나갈 뻔 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던 청년들이 언덕배기를 넘어설 때 쯤 어느 정도 서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또래들은 나름의 작전대로 마을 뒤편에 있는 대나무 숲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꿩들이 마을 앞까지 몰리면 잠시 몸을 숨겼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기다렸다가 횡재를 하자는 속셈이었습니다.

 꿩은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지만 갈수록 힘에 겨워 보였습니다. 꿩을 쫓는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지쳐갔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 언덕 밑으로 구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마을 앞까지 쫓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 꿩이 솔밭 속에 잠시 숨었다가 원기를 회복해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후에 우리 마을 청년들이 다시 꿩을 발견한 듯, 되쫓아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꿩이 우리 생각대로 되돌아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제 꿩도 많이 지쳤는지 밭두렁에 잠시 앉았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 같으면 다시 하늘로 비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들은 담장 밑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꿩이 날아와 우리 앞에 있는 눈 더미 속에 머리를 쳐 박으면  몸을 날려 덥석 안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어느 새 한 무리의 청년들이 달려오더니 우리가 몸을 숨긴 건너편 솔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지친 꿩이 앉은 게 분명합니다. 우리들도 솔밭을 향해 뛰쳐나갔습니다.

내가 최종 승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우리 또래들의 꿈은 한낱 환상으로 끝이 났습니다.

몸이 날쌔기로 이름난 영식이 형이 축 쳐진 꿩 한 마리를 한 손에 움켜 쥔 채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앞 다투며 꿩을 만져보았습니다.

아직 온기가 남은 꿩을 가까이서 보고 직접 만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했으니까요.

나는 거기다 윤기가 좍 흐르는 깃털 한 개를 얻었으니 기분이 우쭐했습니다. 

 이렇듯 당시의 꿩몰이는 토끼몰이와 더불어 눈 쌓인 한 겨울 시골 사람들의 놀이이자 운동이었으며, 

아이들에게 그 겨울은 가슴 두근거리며 동심을 살찌우는 계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