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교단 첫날에
내 나이 만 스무 살 육 개월,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한 지 열 닷새 만인 1968년 3월 2일 토요일.
이 날은 내가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첫 발을 들여놓은 날입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첫 출근 첫 인사말은 국민학교 시절 등굣길에 나설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첫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법 의젓해 보인다고 말씀하셨지만,
처음 입어보는 양복에 넥타이가 영 어설프기만 했습니다.
교직에 처음 몸을 담게 된 정읍신풍국민학교는 집에서 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버스로 통근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하숙이나 자취를 해야만 근무할 수 있는 학교에 발령이 난 친구들에 비하면 행운이었습니다.
이 학교가 초임지라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까닭이 있었습니다.
이웃 영원국민학교 5학년 때에 담임선생님을 따라 이 학교까지 걸어와서 개교식에 참석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이십여 분쯤 걸으니, 측백나무 울타리와 빨간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몸 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으며 교문에 들어서니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과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순박하고 수줍은 웃음, 호기심 어린 표정, 조금은 지치고 여윈 모습들…….
자주 보아왔던 우리 마을 아이들이나 나 어릴 때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지 8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 비하면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더디게 변해온 것 같았습니다.
나는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정읍신풍국민학교 개교 이래
첫 교육대학 졸업생을선생님을 맞이하게 되어 큰 기대가 된다는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짝 굳어있던 나는, 마치 이 학교의 새로운 희망이나 된 듯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나는 그 날부터 5학년 1반 70명이 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전 담임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이 비교적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 듣는다며
내 어깨를 다독거려주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다소나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학생들과 친근감을 갖게 하려는 속셈으로 우선 나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나 어젯밤에 많이 생각해두었는데도 마음먹은 대로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 자신에 대한 것과 나와 아이들의 인연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 이웃에 있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아이들처럼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 학교 부근 마을에도 내 친구들이 많다는 이야기 등을 중언부언 늘어놓았습니다.
내 계산이 적중했는지, 처음에는 긴장 속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이들도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지며 친근감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나는,
그 속에서 언뜻 나의 어린 시절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수줍은 말문까지는 열지 못한 채 준비한 말을 모두 마쳤지만, 도무지 끝 종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시계와 창밖을 번갈아 바라보며 종소리 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얼굴이 발그레진 채로 교실에서 나오는 나를 본 선배 선생님이 한 마디 던졌습니다.
"문 선생, 처음은 다 그런 거지. 점차 나아질 거야."
교단 첫날,
선생으로서의 첫 단추는 들뜬 나머지 그리 야무지게 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야무지게 먹었으나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며, 이런저런 다짐을 한 하루였습니다.
'내 동생처럼 아끼며 열심히 가르치자.'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있는 모습과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하며 가르치자.'
≡1968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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