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먹고 힘 좀 내거라.
나는 여름 보양 식으로 삼계탕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이는 50여 년 전의 특별한 사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고모 댁에서의 중학교 유학 시절에 나는 잔병치레가 잦아 부모님의 걱정을 적잖이 끼쳐 드렸습니다.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고 개학을 며칠 앞둔 2학년 때의 어느 날, 학교에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름 내내 밭일 때문에 머릿수건과 호미를 내려놓으신 적이 거의 없는데,
이 날만은 아침부터 나에게 들려 보낼 짐들을 이것저것 챙기느라 분주했습니다.
나를 자식같이 돌보아주는 고모님께 드릴 것들도 정성껏 챙기셨습니다.
아버지는 조반을 마치자마자 마을 일로 면사무소에 가시는 걸 보았지만, 동생들 셋은 어찌된 영문인지 통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뒤뜰에 가보니 어머니는 어느 샌가 토실토실한 암탉 한 마리를 잡아 놓았습니다.
명절 때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 볼 수 있는 풍경인지라 손님이 오시나보다 짐작했습니다.
손님 덕분에 고기 몇 점이라도 얻어먹을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습니다.
한참 후에 고소한 닭고기 냄새가 우리 집 구석구석에 번져갔습니다.
부엌에서 상을 차리는 소리는 나는데, 손님이 오시기는커녕 어머니도 아무런 내색이 없었습니다.
"얘야, 얼름 이리 오니라."
어머니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 보았더니, 거긴 의외로 구석진 골방이었습니다.
우리 집의 어둠침침한 골방에는 항상 크고 작은 잡동사니가 여기 저기 놓여있었습니다.
손님이 와서 잠자리가 부족할 때에는 물건들을 이리저리 밀치면 한 사람 정도는 들어 누울 수도 있습니다.
늘 쾌쾌한 냄새가 배어 있지만 그런대로 쓸모가 있는 방이었습니다.
골방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어머니께서 가져다 놓은 삼계탕이 목판 위에 통째로 놓여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오가시며 준비했던 그 닭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언제 챙겨 넣었는지 그 귀하다던 인삼 두어 뿌리가 머리를 삐죽이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싹 발라 먹어라. 이 놈 먹고 힘 좀 채리거라. 동생들 오기 전에 다 먹어야 한다. 응?"
하시며, 문을 꽉 닫고 나가셨습니다.
모락모락 맴도는 김과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냄새에 도취된 나는 닭다리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습니다.
갑자기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동생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개학을 앞두고 허약한 나를 챙기느라 동생들까지 집 밖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내 젓가락을 슬며시 놓고 말았습니다.
여름 내내 뙤약볕 아래에서 밭일을 하시며 얼굴이 까맣게 거칠어지신 어머니.
형에게 밀려 아무 것도 모른 채 동네 어디에선가 놀고 있을 동생들.
그리고 몸 건강히 공부 잘 하라고 당부하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외출하신 아버지…….
가족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목이 꽉 메어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소리 없이 골방을 나왔습니다.
시무룩해진 내 얼굴을 보고 눈치를 챈 어머니께서는,
"이게 뭐냐? 싹싹 발라 먹으랑게. 다 먹으면 몸에 좋을 턴디……."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씀에는 아들에 대한 연민과 걱정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고모님 댁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마음이 무거웠으니, 어머니의 속상한 마음은 오죽하였을까?
그래도 남은 가족들이 둘러앉아 서로 챙기며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놓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어머니가 마음이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색다른 음식을 보면 드시기도 전에 배부르다 하시며, 자식들 앞으로 밀어놓곤 했으니까요.
이렇듯 어릴 때부터 허약한 몸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나의 효도는 시작부터 흔들린 셈이었습니다.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 했는데…….
≡ 1961년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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