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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연둣빛

땡볕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감질 나는 두레박질


  점심 후의 다소 긴 휴식 시간, 아이들은 어제 약속한 대로 운동장 한편에 모여 공차기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윗배양구지와 아랫배양구지는 서로 이웃하고 있는 마을이라, 편을 나누어 공을 차는 일이 잦은 편입니다.

두 마을은 이름은 물론 위치도 거기서 거기로 매사에 전통적인 동반자이자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고무공은 마을마다 공동으로 한 개 쯤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번갈아 사용하곤 합니다.

골문이라야 크게 몇 걸음 재어서 양쪽에 책보 한 개씩 그것으로 준비 끝입니다.

가위바위보로 골문과 먼저 공격하는 팀을 정하는 동안 아이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다다릅니다.

골을 넣어 마을의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기대에 저마다 몸이 들떠있습니다.

 

  한낮의 뙤약볕이 쏟아지는 운동장에는 공을 쫓는 아이들을 따라 모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마치 먹이를 따라 다니는 송사리 떼처럼 공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한 명만 문지기이고 나머지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인 셈입니다.

  맨발로 뛰는 아이들이 태반이지만, 간간이 고무신짝이 하늘로 치솟기도 합니다.

한결같이 검게 그을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공을 쫓느라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지만 마음만은 즐겁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기진맥진하여 턱밑까지 숨이 차오릅니다. 

당차고 힘이 좋은 아이들은 기세 좋게 공격을 주도하지만,

얌전한 아이들은 몸을 사리느라 공 한번 발에 닿기가 쉽지 않습니다.

  운 좋게 공이 자기 발에 한번이라도 스치게 되면 그것만으로 좋아서 방방 뜁니다.

헛발질을 하거나 제자리에 축 늘어져 주저앉는 아이들도 하나 둘 늘어납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보리밥 몇 숟갈로 채운 배가 꺼지는 건 잠깐입니다.

평소에도 가끔 횟배를 앓던 한 친구는 공차기를 포기한 채, 골문 옆에 쭈그려 앉고 맙니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의 걷다시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한두 살 더 먹었거나 덩치가 큰 아이들이 주도권을 잡고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오후 수업을 예고하는 예비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참았던 갈증을 풀기 위해 운동장 구석에 자리 잡은 우물가로 줄을 섭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 낡아빠진 두레박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면서 우물 안의 돌 벽에 부딪칠 때마다 물이 튕겨 나갑니다.

쭈그러진 두레박이 밖으로 들어올려지면 물의 반은 이미 새어나가 버리고 나머지 반만이 몇몇 아이들의 목을 적십니다.

  참으로 감질 나는 두레박질이 몇 번 계속되지만, 그것마저 힘센 아이들의 차지가 되기 일쑤입니다.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이 두런두런 원망의 소리를 내뱉지만, 누구 하나 그들을 챙겨 줄 여력이 없는 듯 합니다.

벌컥벌컥 서둘러 몇 모금씩 마신 아이들은 냅다 교실로 달려갑니다.

  줄 끝에 쳐져 있던 몇 아이들은 시작종 소리에 쫓겨 목도 적시지 못한 채, 마른 침을 삼키며 그냥 교실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운동장 위에는 아직도 한낮의 뙤약볕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 1958년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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