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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은백빛

보리밭에 대한 단상

      보리밭에 대한 단상 

 

보리는 소만(小滿) 무렵에 익기 시작하여 망종(芒種)이 되면 서둘러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이

조상들이 마련해놓은 절기의 지침이자 자연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봄의 뒤끝이 싱그럽게 채색되어가던 어느 날, 문중 일로 부안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날이 바로 절기로 소만이었습니다.

부안읍을 벗어나 상터 마을과 가다리(노교) 사이를 달리다 보니, 길 양편에 펼쳐져 있는 보리밭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완연한 녹색으로 치장한 보리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의 상념은 어느 새 반세기 전 국민학교 시절의 하굣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이맘때면 보릿고개라 하여 너나없이 배고픔을 참고 버텨야 했습니다.

허리춤에 대충 매두었던 책보가 흘러내리다 못해 엉덩이쯤에 걸쳐진 아이들의 하굣길은 나른하기만 했습니다.

학교가 있는 영원 소재지를 출발하여 똑다리목을 지나면 오르막인 역재몬당이 떡 버티고 있습니다.

여기를 넘어서야만 비로소 황새다리에 이르는 데, 거기가 우리 마을 배양구지였습니다.

  집까지 가려면 가장 힘이 부치는 곳은 똑다리목을 지나 역재몬당을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보리밥 몇 숟갈의 하찮은 에너지는 이미 소진된 지 오래인지라, 우리들에게는 최대의 난코스였습니다.

허기도 달래고 재미도 맛보는 보리 서리를 하려면 역재몬당을 넘기 전에

왼편 언덕배기 뒤편이 적지라는 걸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들은 보리밭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몸을 숨기기 좋은 밭둑 아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리고 각자 보리 모가지를 한 움큼씩 꺾어 들고 불에 그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소리가 점차 낮아지는 것은 노출되지 않으려는 무언의 약속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까끄라기와 껍질을 떨어내기 위해 저마다 여린 손바닥을 싹싹 비벼댔습니다.

  잠시 후 제법 말랑말랑하고 토실토실한 보리알들의 감촉이 느껴질 때 쯤,

후후 불어 한입에 탁 떨어 넣으면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줌을 연이어 먹고 나면 훌쭉했던 배도 조금은 채워졌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아저씨가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놈들아, 멋혀!”

  아마 조금씩 새어나가는 연기를 보았던지, 아니면 고소한 냄새를 맡았던 게 분명합니다.

우리들은 재빨리 밭두렁 사이로 뿔뿔 기어가 몸을 한껏 낮추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뒤태를 보면 누구 아들인지 뻔히 알 테지만, 한두 번 소리만 지르고 모른 채 지나쳤습니다.

무사히 몸을 피한 친구들은 그때서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까매진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깔깔댔습니다.

교실의 칠판 한 구석에 써놓고 신신당부했던 선생님의 말씀은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주훈…보리서리를 하지 말자!’

  지금은 경관농업이라는 이름으로 청보리밭을 가꾸어 찾아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관광 수익을 올리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의 보리밭은 힘겨운 삶의 고비를 넘겨주는 호구지책의 수단이었습니다.

  나는 초여름 보리밭 위로 가슴 찡한 추억을 일렁인 뒤, 다시 차에 올랐지만 그 옛날의 잔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 2008.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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