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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은백빛

나에게 도시락은 가장 맛난 음식

    

        나에게 도시락은 가장 맛난 음식


  사람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음식이 있겠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음식의 기호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에겐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이따금씩 생각나는 음식이 있으니,

점심시간에 먹던 '도시락밥'이 그것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직 생활의 전반기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도시락은 나의 동반자였습니다.

출근길의 짐이 되었던 도시락 걱정은 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부터 사라졌지만,

어머니와 아내의 손맛이 묻어있었던 도시락밥 맛은 추억의 뒤안길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시절에 따라 도시락밥의 메뉴는 달라졌지만, 달콤하고 구수한 맛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밥덩이를 젓가락으로 떠올리는 순간부터 입 속에선 군침이 감돕니다.

혀끝에 닿으면 입 안의 온기로 데워지며 씹을수록 감칠맛이 배어나는 것이 도시락밥입니다.

 

  벌써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책보는 책 위에 얹힌 도시락 때문에 그 무게가 두 배로 무거워집니다.

특히 6학년 때에는 야간 학습용을 포함해 도시락 두 개가 얹히다 보니,

책보를 걸쳐 맨 어깨를 한쪽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행여 반찬이 엎질러지지나 않을까 안간힘을 쓰면서 걸어야만 했습니다.

  도시락 안 쪽에 곁방살이처럼 자리 잡은 반찬 그릇이 제자리에 있으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등굣길에 장난을 치거나 달리기라도 하게 되면 도시락 안의 내용물들은 어머니가 곱게 넣어준 대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김칫국물이 밥 속으로 스며드는 건 예사고, 심하면 책과 공책까지 물들어 시큼한 냄새가 꽤 오래까지 가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젓가락 놀림이 빨라지면서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까지 넘나듭니다.

갈치 도막이나 멸치 볶음이라도 싸 가지고 가는 날이면 친구들의 젓가락 침범 때문에 금방 바닥이 나고 맙니다.

뚜껑을 세워 도시락을 반쯤 가리고 먹어야 겨우 몇 점 차지가 됩니다.

  도시락의 바닥이 보이고 고픈 배가 채워지고 나서야,

보리밥 위에 쌀알 몇 개라도 더 얹으려고 애쓰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올려집니다.


  겨울철의 야간 학습 시작 전에 도시락밥 먹는 재미 또한 여간 아닙니다.

한 시간 전부터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난로 위에 수북이 쌓아놓은 도시락은 피사의 사탑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찬 것은 아래로 내리고 데워진 것은 위로 올리며, 난로의 혜택을 골고루 받게 하는 일은 선생님의 몫이었습니다.

그땐 도시락밥을 먹는 것 못지않게 데우는 재미도 무척 쏠쏠했습니다.


  고모님 집에서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에 도시락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코끝이 찡해집니다.

  당시 구공탄은 서민들의 추운 겨울을 녹여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궁이의 공기구멍을 손톱만큼만 열어두고 정성들여 관리해야만,

연탄 한 장으로 밤 내내 단칸방의 온기를 유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력으로 아침밥까지 끓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당시 겨울철 서민들의 절약하는 겨울나기의 지혜였습니다.

  칼날 같이 매서운 겨울바람이 지난밤에 내린 눈을 마당 한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아침이었습니다.

  고모님은 눈을 뜨자마자 평소처럼 아궁이를 확인해 보았지만, 이미 불기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날따라 질이 좋지 않았던 구공탄이 속을 썩인 것입니다.

찬 바람이 드나드는 부엌에서 고모님은 연탄불을 새로 지피기 위해 연기를 뒤집어 쓴 채 안간힘을 쓰고 계셨습니다.

  자식과 조카가 행여 아침밥조차 거르고 등굣길에 나설까

마음 졸이는 고모님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등교 시각이 다 될 때까지 아궁이는 연기만 내뿜을 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늦기 전에 어서 학교에 가렴. 밥은 되는 대로 갖다 줄 게."

  인정 많은 고모님은 아침밥도 거르고 학교에 보내는 것을 몹시 안쓰러워하셨지만,

나는 고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일부러 씩씩하게 등굣길에 나섰습니다.

  첫째 시간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3층 교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도시락을 꽉 껴안고 교문을 들어서는 고모님이 보였습니다.

끝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뛰쳐나가 고모님이 건네주시는 도시락을 받아들었습니다.

 "배 많이 고프지? 얼른 들어가 식기 전에 먹어라."

  되돌아가시는 고모님의 뒷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서둘러 밥을 지어 한 숟갈이라도 더 넣으려고 꾹꾹 눌러 담으셨을 고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타관 객지에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가시기도 벅찰 터인데 나까지 챙기시는 고모님을 생각하면,

그 도시락 속에 담긴 것은 그냥 밥이 아니고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날 고모님이 가져다주신 도시락밥의 맛을 나는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직 생활 초기에 통근할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의 짐받이에도 어김없이 도시락 가방이 얹혀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들끼리 빙 둘러앉아 먹던 도시락밥의  맛은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각자의 반찬들을 한가운데에 모아놓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각기 어머니나 아내가 정성을 다해 마련해준 도시락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급식 학교에 발령이 나면서 점심을 싸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자,

나는 한동안 도시락밥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휴일 근무를 할 때에는 매식을 마다하고, 가끔씩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 속의 도시락은 단순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고,

어머니와 아내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정겨운 추억과 달콤한 맛이 아직도 입 속에서 맴도는 걸 모면, 나의 도시락 예찬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가 봅니다.

  오늘도 도시락밥이 솔곳이 생각납니다.


                                                                                                                          ≡ 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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