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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요사(歌謠史)

 

나의 가요사(歌謠史)

    

 

  사위한테서 남진 리사이틀 관람 티켓을 받고 나서 나는 10여 일 동안을 들뜬 상태로 보냈다. 70년대 대한민국 최고 가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진을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어찌 예삿일이라 하겠는가.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나도 젊어서 한때는 유명인과 나를 동일시하던 과정이 있었다. 연예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바로 가수 남진이었다. 그땐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듯 매달렸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리사이틀 티켓을 매만지면서 꺼졌던 불씨가 되살려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하지 않던가. 나는 남진과의 가느다란 인연이 될 법한 일이라도 있을까 찾아본 끝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와 내가 비슷한 연령대로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가 ‘가슴 아프게’를 부르며 무대에 등장할 무렵, 나는 분필을 들고 교단에 등장했었다.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이게 어디 하찮은 인연인가.

  리사이틀의 막이 열리자, 먼저 남진의 가수생활을 담은 흑백 영상이 상영되었다. 40년 넘게 가수 생활을 이어온 터라 그의 가요사(歌謠史)는 화려하고 풍성했다. 그런데 영상을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요사는 가수들만의 전유물(專有物)일까. 보통 사람들도 시대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가요가 있을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만의 가요사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한때는 노래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하기야 요즘엔 노래 몇 곡쯤이야 가수 뺨치게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공연장을 나온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만의 가요사를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가요 입문기(入門期)는 남진의 노래가 유행할 무렵이라고 볼 수 있다. 20대 초반의 새내기 선생이었던 나는 동갑내기 J선생과 일마다 손발이 맞았다. 그는 노래를 썩 잘 부르는 것은 물론, 바이올린 연주 또한 일품이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후, 조용한 시골학교의 교무실은 우리의 독무대가 되었다. J선생은 바이올린을 켜고 나는 오르간을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슴 아프게’와 ‘섬마을 선생님’을 물리도록 불렀다. 심지어는 근무하던 학교의 학예회 무대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 그야말로 둘은 시절 만난 청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동기생 몇 명이 뭉쳐 만든 계(契)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선생이 된 우리는 방학 때면 시골집을 돌며 계를 치렀다.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며 밤늦도록 유행가를 부르다보면 교자상 가장자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철없는 청춘의 탓으로 돌리기엔 좀 심하다 싶었다. 그 무렵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은 마치 우리를 위해 만든 노래처럼 들렸다. 모두 총각 선생이었으니 우리의 주제가라 되는 양 불러댔다.‘섬마을 선생님’은 내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노래가 되었다.

  나의 가요사 중 전성기는 중년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 무렵 나를 포함한 같은 직장 동료 네댓 명은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주점 출입에 맛을 들였다. 그때 나의 애창곡은 '옥경이'였다, 가사를 적은 종이쪽지를 들고 다니며 외운 덕분에 남보다 먼저 이 노래를 익힐 수 있었다.

  한동안 '옥경이'는 거의 나의 대명사였으며,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척척 부르다 보니 노래를 꽤 잘 부른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의 가요사상 가장 오랜 기간 내 입에 올렸던 노래가 ‘옥경이’였던 것 같다.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나의 가요사도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가사를 외울 걱정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르려면 가사 외우랴 박자 맞추랴 애로사항이 참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어디 그러한가. 가사는 노래방 기기가 친절하게 알려주고 박자도 알아서 척척 맞춰준다. 근사한 백 코러스까지 깔아주면 나도 노래깨나 하는 것 아닌가 착각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이 무렵 나의 애창곡은 '원점'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었다. 그 뒤를 이어 한동안 '사랑은 나비인가 봐' '정 때문에' ‘갈매기 사랑’ 등을 질리도록 불렀다. 이처럼 레퍼토리가 다양해진 것도 다 노래방 덕분이었다.

 

  요즘은 노래를 좋아하거나 부르는 일도 삶의 일부가 된 세상이다. 세월 따라 변해온 나의 가요 역사를 더듬다 보면, 어렴풋이나마 내 삶의 한 자락도 들여다보인다. 내 가요사도 내 인생사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나름대로 소중한 과정이다.

요즘 노래방 출입은 알아보게 뜸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인지 ‘아, 옛날이여.’라는 노래가 가끔 머릿속에서 맴돈다. 나는 지금 내 가요사의 후반부를 걸으며, 젊음도 한때 노래도 한때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내일은 10월의 마지막 날에 불러볼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을 미리 챙겨봐야겠다.                      - 2013. 10.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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