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가져다준 '덤'
숲속으로 진입하자마자 짙은 내음이 콧속을 파도 들더니, 금세 온몸을 적시는 기분입니다. 엊그제 내린 비로 인해 녹음은 더욱 짙고 깨끗해졌습니다. 날의 금요 산행은 최적의 자연 조건 때문에 발걸음은 더없이 가뿐했습니다.
그 동안 통행금지였으나, 최근 보수 공사를 마치고 개방된 산책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길 주변으로 몸집을 풍성하게 불린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고 그 사이사이로 하늘 조각이 희끗희끗 보였습니다.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이 돌에 부딪칠 때마다 간지러운 듯 잘잘거렸습니다. 그럴 때면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자기도 자연의 일원임을 확인해주듯 재빠른 몸짓을 보여주었습니다.
‘원적골 탐방로’는 일주일에 두 차례씩 다니는 경로라 그런지 이젠 눈을 감고도 길이 훤할 정도입니다. 어디쯤에 무슨 나무가 있고, 골짜기엔 이맘때쯤 어떤 야생화가 피어 있을 테고……. 그러나 그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나름의 반환점에서 잠시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 유일한 휴식입니다. 그곳에서 일행과 함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필수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잠시 땀을 식혔으니 출발점으로 회귀하는 발걸음 또한 가벼웠습니다.
반환점에서 10여 분쯤 걸었을까? 우연히 앞서서 걷는 일행의 모자를 보는 순간 내 머리가 허전함을 알아차렸습니다. 심신이 가뿐한 것은 그때까지였습니다. 조금 전에 앉아서 쉬었던 바위 옆에 모자를 둔 채 일어선 것입니다.
나는 건망증을 자책하며 서둘러 발길을 되돌렸습니다. 되돌아가는 내 모습이 조급하게 보였던지 한 등산객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계시나 봅니다.”
“예. 물건 하나를 놓고 와서요.”
“운동을 더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여기세요.”
지나는 이의 말 한 마디에 나는 다시 평상심을 되찾았습니다.
‘그래 맞아!’
나는 덤으로 더 걷게 된 것에 감사하며, 매사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모자는 무탈하게 그 자리에 있었으며,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기다려 준 일행과 다시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씁쓸한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내가 소지품을 빠뜨렸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나를 버릴 지도 모를 일. 그러기 전에 정신 바짝 차려야지…….'
- 2013. 6.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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