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위의 두 얼굴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 나들이 길에 나섰습니다. 고속도로로 달려 성남까지 세 시간 정도 걸리니 나로서는 흔치 않는 운전 여정입니다. 나는 본디 장시간 운전에 부담을 갖는 편이거든요. 그렇지만 이날은 큰딸 내외가 사는 모습도 궁금할 뿐 아니라, 이사를 한다기에 큰맘 먹고 나섰습니다. 성남이 초행길은 아니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동행을 하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뻥 뚫린 고속도로는 보기에도 시원스럽습니다. 주변의 짙푸른 산야와 마을들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차창 밖을 스쳐갑니다. 간간이 아파트단지와 공장들이 위용을 부리며 다가섰다 밀려갑니다. 그 안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을 이름 모를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길을 넓어지고 차들은 많아집니다. 승용차건 화물차건 결코 무작정 달리는 건 아닐 것입니다. 뭔가 볼 일이 있고 목표가 있을 테니까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그만큼 사람이나 물류가 유통한다는 증거일 것이며, 세상이 활력을 갖고 움직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텅 빈 고속도로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모습입니다. 그건 정지와 죽음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느새 차들의 행렬 속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른 차들이 내가 달리는 좌우 차선으로 쌩쌩 지나갑니다. 고속도로 운전에 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추월을 당하든 말든 내 행로에 충실했습니다. 백미러를 보니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보입니다. 내 꽁무니에 바짝 들이대고 경적을 마구 울리더니, 급히 차선을 바꾸며 나의 규정 속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휙 지나갑니다. 뭔가 한 마디 내뱉는 것 같은 그 운전자의 표정을 언뜻 보며 그가 스스로 만든 스트레스를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연민이 느껴집니다.
내 차를 젖혀버린 그 차는 시속 150㎞ 이상은 너끈히 될 듯합니다. 그의 운전 상식에는 깜박이는 없는 듯, 빈틈만 있으면 헤집고 달리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차의 뒷모습은 그 운전자의 마음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평소에도 자주 목격하는 일이지만, 과도한 속력으로 달려오는 차치고 깜박이를 제대로 작동하는 차는 보기 드뭅니다. 다른 차는 안중에 없으며, 오직 전진만이 그들의 운전 상식이자 습관처럼 보입니다.
활력의 고속도로 위에 끼어드는 무례라는 또 다른 얼굴이 사라지는 그날,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의 국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3. 6.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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