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든든한 이유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밥을 짓기 위한 아내의 첫 번째 동작은 쌀통의 누름 장치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쌀통의 배출구에서는 겨우 쌀 한 줌이 조르르 쏟아지더니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쌀의 재고를 확인해두지 않은 탓도 있지만, 쌀이 떨어져 식사를 거르게 생겼으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이 같은 사태가 났다면 눈물이 날 일입니다. 다행히 잡곡을 찾아내 굶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하찮은 실마리가 생각을 많게 만들었습니다.
빈 쌀통이 내던 소리가 긴 여운이 되어 어린 시절 듣던 쌀독 바닥 긁히는 소리를 부른 것입니다.
한동안 그 소리는 좀처럼 귓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반백년을 훌쩍 넘은 그 시절의 아픈 소리가 왜 그토록 새삼스러웠는지…….
그날 아침 어머니는 쌀독 바닥을 긁으며 자식들 생각에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까? 아버지는 또 얼마나 시름을 했을까?
어머니가 들려준 그 시절의 밥 이야기 한 토막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느날 아침 어머니는 남겨둔 밥을 양푼에 담은 채로 솥에 넣어두었습니다.
넉넉치는 않았지만 저녁에 우리 가족이 나누어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밥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잽싸게 뛰어나가는 사람을 보고, 누군가 짐작을 했지만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며 모른 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사립문 밖에 놓여 있는 빈 그롯을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그랬듯이 가난을 멍에처럼 얹고 살았던 그 시절, 밥은 허기와 눈물의 상징이었습니다.
배부르고 등따수우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밥은 그 시절의 지상 목표였고 모든 이의 꿈이었으니까요.
요즘도 호구지책이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한편에서는 오히려 밥이 푸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밥 대신 다른 음식들을 먹거나 다이어트라는 이유로 아예 밥을 멀리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배부르고 등따수워도 허전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아마 마음이 고픈 탓일 것입니다.
욕심이 지나친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이루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은 늘 마음이 고프기 마련입니다.
나는 요즘 예전보다는 마음이 덜 고픈 편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의 크고 작은 욕심들이 퇴임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집에서 먹든 밖에서 먹든 밥은 열심히 챙기는 편입니다. 밥 안에 담긴 이런저런 추억도 덤으로 먹습니다.
그래서 밥은 늘 든든합니다.
- 2012. 12.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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