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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눈

   할머니들의 눈

 

산책에서 되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길가에 한 할머니가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늦가을 오후 해를 등진 채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습니다.

옆에 놓인 바구니에는 뿌리 채 뽑은 식물들이 반쯤 차 있습니다. 늦가을인데도 아직은 풀빛이 가시지 않은 것들입니다.

 

언뜻 보아도 할머니는 팔순이 넘어 보입니다. 허리는 굽고 깊이 파인 주름 사이로 세월의 그늘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스산한 바람결에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이 하얀 연기처럼 힘없이 날립니다.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캐는 걸 보니, 귀한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무슨 약초 같은 거 캐시는 거예요?”

단번에 알아듣는 걸 보니, 의외로 귀가 밝으신 편이었습니다.

  “아니여, 꼬들빼기가 있걸래…….

순간 입안에서 꼬들빼기 김치 맛이 쌉싸름하게 감돌았습니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잡초쯤으로 보이는 꼬들빼기,

봄에 얼굴을 내밀어 여름에 몸집을 불리다가 이제 머지않아 시들면 땅으로 돌아갈 생명이었습니다.

 

그게 용케도 할머니 눈에 띤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걸 캐면서 자식 손주들의 밥상을 떠올렸을 지도 모릅니다.

꼬들빼기는 늦게나마 제 가치를 알아주는 임자를 제대로 만난 셈입니다.

길가의 척박한 땅에서 그냥 사라져버릴 번한 보잘것없는 식물이 반찬이 되어 오를 할머니 밥상이 떠오릅니다.

이처럼 작고 하찮은 것은 왜 할머니 눈에만 띠는 것일까?

시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하찮은 것도 보이게 되고 마음이 없으면 큰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사소한 것까지도 볼 수 있는 우리 할머니들의 눈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큰 것만 쫓는 혼탁한 눈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기에 할머니들은 작은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지혜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맘때쯤 꼬들빼기가 어느 곳에 있을 것이며, 맛이 꽉 차 있을 것이고,

그걸 뽑아 뿌리 채 김치를 담그면 씁쓰름한 맛이 일품이라는 것도…….

때로는 책을 들여다보거나 인터넷 검색보다 더 정확한 정보가 할머니 머리 안에 있는 가 봅니다.

우리들의 할머니는 그런 분입니다.  촌로(村老)의 생활철학이 가슴이 와 닿습니다.

                                                                                                 - 2012. 11.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