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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가 실증해주다.

 

   바늘귀가 실증해주다.

 

오랜만에 수납장 깊숙이 잠자고 있던 재봉틀을 꺼냈습니다. 큰딸이 대학 시절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내가 재봉틀을 마지막 만졌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봉질을 할 때 옆에 앉아서 기웃거린 일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 후로 어머니가 나이를 드시면서 가끔 바늘귀를 끼워드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때로는 헝겊쪼가리를 얻어 박음질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으로 바짓가랑이 터진 곳을 박아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재봉질은 전혀 생둥이는 아닙니다.

그 후로 가정에서 재봉틀이 살림의 필수 목록에서 제외되면서 재봉질 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추억의 재봉질을 한번 시도해 볼 속셈으로 우선 재봉틀 먼지를 떨었습니다.

설명서를 보며 순서에 따라 그럭저럭 실을 꿰어갔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난코스인 바늘귀에 실을 꿰는 과정에서 버벅대기 시작했습니다.

돋보기안경을 써봤지만, 실은 바늘귀 부근에서 맴돌았습니다.

온몸을 비틀면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은근히 왕년의 솜씨를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커다란 손 돋보기까지 들이대고서야 실은 겨우 바늘귀를 통과했습니다.

노루발 밑에 헝겊을 밀어 넣고 역사적인 박음질의 시동을 걸었지만, 맘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좀 더 연습을 해볼 작정으로 재봉틀을 일단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두었지만,

우선 바늘귀부터 제대로 꿰는 것이 선결 과제인 것 같습니다.

 

어두워진 어머니의 눈을 대신해 맨눈으로 바늘귀를 척척 꿰어주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내가 바늘귀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바늘귀가 나의 나이 듦을 실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이에 지나치게 연연하면 늙음을 재촉하는 것.

나이를 지나치게 초연하면 나이값을 못하는 것.

                                                                                                                     - 2012. 10.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