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사오솔길 산책기-후편)
천년 정읍사, 오솔길에 머물다.
정읍사오솔길의 진미(珍味)는 길 위와 숲 안에 있어
정읍사오솔길의 제1코스 중에 두꺼비바위는 중간쯤의 위치에 있는데, 여기부터가 ‘언약의 길’입니다.
이곳엔 꽤 넓고 잘 다음어진 쉼터가 있습니다. 서너 팀들이 숨을 돌리며 쉬고 있습니다. 아줌마들의 유쾌한 수다, 가족들의 정겨운 웃음, 삼락님들의 왕년의 한가락 체험담 등이 어우러져 숲속으로 번져갑니다.
‘사랑의 언약함’을 중심으로 사랑을 다짐하는 자물쇠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습니다. 언약의 내용이 무엇일까 알고도 싶지만, 궁금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지난주에 들렀을 때는 평상 옆에 몽당 빗자루 하나가 매달려 있었는데 이날은 보이지 않습니다. 산책객을 위해 평상 위를 말끔히 쓸어두라는 뜻으로 누군가 챙겨놓은 착한 빗자루 같았는데…….
쉼터에서 얼마 걷지 않으니 ‘실천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연인들이 사랑을 실증하는 길이라 합니다. 마침 건장한 두 남자가 맨발로 쌩쌩 지나갑니다. 연인이나 사랑과는 먼 행보로 보입니다. 맨발의 촉감을 즐기고 있는 이는 그들일 텐데, 웬일인지 내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집니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간간이 옆으로 빠져나가는 작은 오솔길이 나타납니다. 주변의 명소나 작은 마을로 갈 수 있는 샛길이라는 것을 친절한 안내판이 알려줍니다.
드디어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탄탄대로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평탄한 오솔길로, 솔 내음을 만끽하며 도란도란 걷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고된 길이 끝나면 여유로운 길이 나오는 법. 때맞춰 지나가는 바람결에 땀도 식고 피로도 모두 풀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지난 늦여름 태풍으로 허리가 부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수십 년 묵은 소나무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정읍사오솔길 제1코스의 마지막 길인 ‘지킴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사랑을 완성하고 그것을 지키자는 의미입니다. 이 길에서 나이 든 삼락님들이 지키고자 다짐할 일 중 제1순위는 아마 건강일 것입니다.
문화광장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접어드니, 뜻밖에 시누대숲이 가로막습니다. 그 안으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 요리조리 이어져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진 소나무 숲길에 조금은 물려 있던 일행은, 이색적인 시누대숲의 정취에 반색을 합니다.
여남은 걸음 앞에 가는 사람이 분별이 안 될 정도로 빽빽하고 구불구불합니다. 가벼운 바람결에 시누대 잎사귀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삭삭거립니다. 시누대숲은 그 길이가 족히 300여m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을 벗어나자 순탄한 내리막길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통나무계단을 내려옴으로써 드디어 정읍사오솔길 제1코스의 끄트머리에 당도했습니다. 길 따라 이어진 사랑의 기승전결(起承轉結)도 여기까지이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지켜가는 일인 듯합니다.
길가에 피어있는 쑥부쟁이 꽃이 수더분한 모습으로 일행을 맞이해줍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니 월령마을 담장의 예쁜 그림들이 활짝 웃어줍니다. 문화광장과 마을 사이의 밭둑에는 잠자리 한 마리가 수숫대 끝에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정읍사오솔길 산책의 성공적인 마무리에 대한 삼락님들의 자화자찬에 냇가의 억새 무리가 가벼운 몸짓으로 화답합니다.
귀가 길에도 산책의 잔상과 여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습니다. 정읍사오솔길의 진미(珍味)는 아마도 길 위와 숲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사랑의 기승전결도 함께 있어 흥미롭습니다. 정읍사오솔길은 수수하지만 옹골찹니다. 언제 걸어도 아늑하고 정겨워서 때로는 길과 사람이 한 몸이 되기도 하는 길입니다.
- 2012. 10.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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