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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간의 추억 한 자락

  '측간'의 추억 한 자락

 

요즘도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어린 시절 우리 집의 측간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당시에는 뒤보는 장소를 일컬어 학교에 있는 것은 변소, 집에 있는 것은 측간으로 불렀던 기억도 있습니다.

측간이 떠오르는 것은, 지금 너무 편안하게 앉아 있으려니,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보던 시절의 불편한 기억 때문이 아닙니다.

나에게 당시의 ‘측간’ 하면 연상되는 단어 중에는 고약한 냄새와 정체 모를 귀신 외에 불에 관한 일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 측간의 화재 사건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화석처럼 남아 있으니,

그때의 공포와 충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5,6학년쯤의 일이었습니다. 원족을 갔다가 해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불이 난 것 같다며 걱정스런 모습이었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신작로 고개를 넘어서니, 누구 집인가 불이 난 게 확실해보였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우리 집 부근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아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콩닥거리며 마구 방망이질을 해댔습니다.

불이 난 곳은 바로 우리 집 측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덕분에 다행히 불은 잡혔으나,

마당 한 구석에 있던 잿간을 겸한 측간은 홀라당 타버렸습니다.

옆방에 사는 아주머니가 불씨가 아직 가시지 않은 아궁이의 재를 무심코 버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나는 당장 볼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하루 이틀은 사방이 터진 두엄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대충 처리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서둘러 말뚝을 세우고 거적때기 둘러쳐 지붕 없는 임시 측간을 만든 후에야, 그나마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겠으나, 뒤를 보는 일은 시원하기는커녕 무섭고 불안한 고역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마저 정겨운 추억의 한 자락입니다.

 

어쨌든 화장실은 근심거리 하나를 씻은 듯 없애주는 고마운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동범은 ‘자연을 꿈꾸는 뒷간’이라는 책에서,

뒷간은 ‘음식→똥→거름→음식’이라는 전통적인 자연 순환 방식을 일구는 중요한 자리라며,

뒷간의 재평가를 말하기도 합니다.

                                                                                                                              - 2012. 9.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