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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속깊은 생활철학'

 

   촌부의 '속 깊은 생활 철학'

 

집안 형님 중 한 분은 평생 땅을 터전으로 삼으며 살고 계시는데, 지금도 노익장과 속 깊음이 참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나하고는 친형제 못지않은 우애를 나누고 있으며 사로 왕래가 잦은 편입니다.

며칠 전 마른 고추를 사러 형님 집에 들렀습니다. 마침 막걸리 새참을 드시다가 지난 체험담 하나를 들려주셨습니다.

 

형님은 젊은 시절 한때 이곳저곳 다니며 험한 산판일을 하셨습니다.

산에서 나무들을 잘라 제지공장 등에 납품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기계톱의 굉음과 큰 나무들이 넘어지는 위험 상황 속에서 매일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커다란 나무 밑둥을 자르고 넘어드릴 때마다,

‘나무도 생명인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형님은 생명을 무자비하게 죽이 것 같아 늘 마음의 짐이 되었던 터에,

뜻밖에 불행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기계톱에 다리를 크게 다친 일을 계기로 결국 그 일을 포기했습니다.

 

한번은 사위가 낚시질로 잡은 가물치 한 마리를 보신용을 삶아 드시라며 가져왔습니다.

고무다라이에 담겨진 가물치는 장정 팔만한 몸둥이를 힘차게 움직이며 물을 튕겼습니다.

생전 처음 대하는 큰 가물치에 형님은 보신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큰 동물은 영검하다 하여 이를 함부로 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떠올렸습니다.

생명에 대한 형님의 유별난 경외심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검스럽게 보이는 가물치를 보신용으로 먹어치운다는 것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형님은 다음날 가물치를 차에 싣고 인근 저수지로 갔습니다.

힘차게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가물치의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벼운 마음이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형님은 행여 사위가 서운하게 생각할까 봐 가물치를 그냥 살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하지 못했다 합니다.

 

“형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장인의 속 깊은 생각을 알면 사위도 아마 박수를 칠 텐데요.”

때로는 촌부의 체험담이 대가의 명언보다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 2012. 8.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