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9봉 종주, '절반의 성공(?)'
퇴임 후엔 지인들과 어울려 매달 평균 10번 정도는 내장산을 찾습니다.
내가 즐겨 찾는 코스는 일주문을 지나 벽련암과 원적암을 거쳐 돌아오는 경로입니다.
초등학생도 거뜬하게 오른다는 바로 그 길입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우리를 듣기도 좋은 이름을 붙여 ‘내장산 지킴이’라 불러주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지킴이라 불리기에는 부끄러운 산책 수준입니다. ‘내장산 9봉’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장산9봉은 장군봉을 비롯하여 연자봉, 신선봉,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령봉 등
아홉 개 봉우리를 말하며, 이들은 서로 어깨를 겯고 있는 형상입니다.
봉우리들은 내장사를 비롯한 사찰, 골짜기, 바위, 동식물 등을 품 안에 안고 있듯 이어져 있습니다.
내장산9봉에 오르지 않고 내장산의 진면목을 이야기하는 것은
샘골인으로서 내장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던 터에,
때늦은 내장산 9봉 종주에 도전할 기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아홉 개의 봉우리 중에 몇 개는 이미 오른 적이 있으나, 단일치기로 9봉 종주를 시도하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종주할 내장산9봉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장군봉(696미터)→연자봉(675미터)→신선봉(763미터)→
까치봉(717미터)→연지봉(670미터)→망해봉(679미터)→불출봉(622미터)→서래봉(624미터)→월령봉(427미터) 등입니다.
나는 동반자들과 함께 정읍시내에서 순창 행 완행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추령이라 불리는 고개에서 내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역사적인 내장산9봉 종주의 첫발을 떼었습니다.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50분 남짓 올라, ‘유군치’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했습니다.
첫 봉우리인 장군봉에 오르는 길은 비교적 완만했지만, 가끔 가파른 오름길이 있어 등줄기에 땀이 배기 시작했습니다.
유군치를 출발한 지 40분 만에 장군봉에 도착했습니다.
장군봉에서 연자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간간이 기암괴석 버티고 있어 발길을 더디게 했습니다.
울퉁불퉁 솟아있는 바위 위에 잠시 걸터앉아 숨을 돌리며, 눈앞에 펼쳐진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의 장관을 감상했습니다.
연자봉에 이르니, 멀리 서래봉 아래 숲 속에 자리잡은 벽련암이 보였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케이블카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결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면서 기분이 급 상쾌해졌습니다.
정상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쾌감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내장산의 최고봉인 신선봉에 도착한 것은 12시 반이 넘어서였습니다.
서둘러 최고봉에서의 인증 샷을 마친 우리는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꿀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까치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바위벼랑을 타고 오르는 최대의 난코스였습니다.
밧줄을 잡고 오르기도 하고 급경사의 바위 위를 기어오른 끝에 2시 반이 넘어서야 정상에 발을 디뎠습니다.
네 개의 봉우리에 오르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내장산의 그림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습니다.
까치봉에 오른 것을 고비로 나의 체력은 바닥에 이르렀습니다. 동료들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머지 5개 봉우리를 오른다는 것은 남은 시간과 일행의 연령을 고려할 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60대 중반, 적지 않은 나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숙고 끝에 이날의 등반을 여기서 마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나머지 봉우리는 가을에 좋은 날을 잡아 남은 숙제를 완수하기로 했습니다.
까치봉에서의 하산 길은 다소 멀기는 했으나, 발걸음은 비교적 가뿐했습니다.
우리는 내장사가 지척인 계곡이 이르러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마지막 휴식을 즐겼습니다.
이날의 내장산9봉 종주는 ‘절반의 성공’이라 자평하며…….
- 2012. 6.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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