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축제에 다녀와서
이효석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정읍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가 고창 학원농장에 광활하게 펼쳐진 소금 동산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보니 소금밭이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하얀 보석 알갱이들이 하늘에서 송두리째 내려앉은 듯합니다.
꾸불꾸불 난 사잇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오밀조밀 작은 생명들을 내 눈과 카메라 안에 수복하게 담았습니다.
메밀밭의 산책은 걷는다기보다 꽃 속에 파묻혀 꿈을 꾸는 듯합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메밀꽃들도 화답하듯 잔물결을 이루며 살랑거립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메밀꽃의 여리고 순수한 모습이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메밀밭의 아름다움에 심신을 적시고 난 뒤 좁다란 도로를 건너가니,
거기엔 또 다른 장관인 해바라기 동산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한걸음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메밀밭에서는 아주 작은 꽃들을 내려다만 보았는데,
여기선 아주 큰 꽃들을 올려다보며 본의 아니게 겸손을 떨어야만 했습니다.
해바라기 꽃은 당연히 해를 향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메밀꽃이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웃는다면, 해바라기는 제법 어른스럽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들은 코스모스나 국화처럼 화려한 꽃 전문(?) 식물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메밀이나 해바라기는 일생을 다하면,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먹거리로 제공하는 '열매 전문'이라는 점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 나들이에서 만난 초가을의 두 얼굴은, 여름 내내 지쳤던 나의 심신을 한꺼번에 씻어주었습니다.
- 2011. 9.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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