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뱀에 관한 썩 좋지 않은 기억
나에게는 유독 싫어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협오와 공포의 대상입니다.
오늘도 등산길에 작은 뱀을 보고 섬칫 놀라 멀찌감치 뒷걸음질 치고 말았습니다.
나의 소심함에 기인한 탓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두 가지 경험은 나름대로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뱀과 개가 그들인데, 사연은 대충 이렇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침에 등교할 때,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모이는 모정 마당까지 가려면 꽤 긴 고샅길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 쯤에 개구멍에서 개가 들락거리는 장소를 지나야 하는데, 어떤 때는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게 엄청 무서웠으며, 등교할 시각이 되면 그곳을 지나가는 일이 심란했습니다.
그날도 그 개가 나올까 봐 살금살금 지나가는데, 별 기미가 없는 듯하여 쏜살같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그 개가 사납게 짖어대며 쫓아와 뒤꿈치를 물었습니다.
나는 기겁을 하여 그 자리에서 넘어졌으며, 책보는 내동댕이쳐지고 고무신 한 짝이 벗겨져 나갔습니다.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좀 멀더라도 다른 길로 돌아서 다녔으며, 그 집은 물론 옆에도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개에 대한 공포가 낙인처럼 박혔으며, 지금도 여전히 개는 기피 동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뱀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도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그 시절 여름방학 땐 논에 나가서 새를 보는 일이 농촌에 사는 아이들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아버지가 외출하시는 날에는 새보기는 내 몫이었습니다.
까끔씩 논두렁을 한 바퀴 돌며 모여앉아 포식하는 참새 떼를 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논두렁에 또아리를 감고 있는 뱀을 만날 경우, 그게 그리 수월하지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논두렁은 물론 마을 안에서도 뱀이 자주 눈에 띠었습니다.
한번은 뜀박질로 논두렁을 돌다가 물컹한 무엇을 밟았습니다.
섬칫한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뱀 한 마리가 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새보기를 포기한 채, 언덕에 세워둔 우산 밑이 쪼그리고 앉아 그 뱀 생각으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로는 뱀은 보기조차 싫은 동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연히 뱀을 만나게 되면 머리부터 삐쭉해지며, 가던 길이 멈칫거려집니다.
심지어는 뱀 꿈을 꾼 날은 종일 기분이 찜찜하며,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뱀이 등장하면 체널을 돌려버릴 정도입니다.
- 2011. 7.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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