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즘 이야기★/***사는이야기

정읍의 ‘88올림픽 성화봉송 기념 조형물’을 아시나요?

                                         정읍의 ‘88올림픽 성화봉송 기념 조형물’을 아시나요?

 

지금부터 23년 전인 1988년 9월 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된 날입니다.

16일 동안 올림픽 주경기장을 밝혔던 성화가 정읍을 지나갔다는 사실이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아마 세월 탓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성화봉송로 중의 한 곳이었던 정읍-소성간 도로변에 가면 이를 기념하여 세웠던 조형물 하나를 만날 수 있으니,

이는 정읍에 남아있는 88올림픽의 유일한 기념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6월 19일 마음먹고 그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인의 권유도 있었지만,

실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연유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정읍에서 고창 방면으로 가는 국도를 달리다보면, 소성면 주동저수지에서 주동주유소 사이의 우측 도로변에

우거진 잡초 사이로 조형물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조금만 과속을 해도 그냥 스쳐 가버리기 십상인 위치입니다.

백여 미터 전방의 주유소 부근에 주차한 뒤, 낫을 챙겨들고 비좁을 갓길을 걸어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우거진 잡초 사이로 3미터 정도 높이에 성화를 든 호돌이 조형물이 나타났습니다.

잡초에 가린 것 말고도 표면 전체가 거무튀튀하게 변해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습니다.

대충 풀을 치웠지만 낫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몸체 부분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쓴 글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이 확연히 드러난 것입니다.

 

전면에는 ‘88올림픽聖火奉送路’라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후면에는 '올림피아 헤라神殿에서 採火된 서울올림픽 聖火는 1988년 9월 6일, 이 길로 奉送되다.

이에 올림픽과 더불어 永遠히 紀念코자 한다. 1988년 9월 井邑郡守 宋炳旭'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글씨를 만났습니다.

당시 서예에 일가견을 가지셨던 아버지께서 한창 필력이 물오르실 때 쯤 이 글씨를 직접 쓰셨으며, 

이 글씨를 시청(당시는 군청)에서 조형물에 새겼던 것입니다. 

힘 있는 서체에서 풍기는 아버지의 채취에 가슴이 잠시 먹먹해졌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추천작가로서 서예의 재능을 떨칠 무렵에 작고하셨기에 안타까움이 더욱 큽니다.

 

 이 조형물의 제막 때에는 관련 행사도 치루고 아버지께서도 그 자리에 초대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일들이 잊혀져가고 있음을 이 조형물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탓도 있지만, 이 조형물을 세운 관련자들의 무관심도 한몫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도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것이 다반사라 하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나로서는 이 조형물이 더욱 애틋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동안 글씨를 쓴 이의 자식으로서 자주 찾아 보살피지 못한 것이 죄스러울 다름입니다.

자주 들러 본래의 모습을 찾는 방법을 강구해볼 생각입니다.

                                                                                              - 2011. 6.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