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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청록빛

사고뭉치 초보운전

           사고뭉치 초보운전

 

 나는 평소에도 기계치에다 소심한 성격으로 기계 기구를 다룰 경우엔 더듬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내가 굴러다니는 기계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건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의 이러한 약점은 자동차 운전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운전면허는 1992년 봄에 동료교사인 권 선생의 손에 이끌려 학원에 등록한 지 한 달여 만에 의외로 쉽게 땄습니다.

내 고질병인 소심증 탓으로 주행 연습은 어려운 고비를 몇 차례 넘기기도 했습니다.

  면허증을 따자마자 권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부를 자청하며,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연습 운전에 나섰습니다.

퇴근 후에 자기 차를 선뜻 제공하면서까지 교습을 시킨 권 선생은 기계치에 운전 초보인 나에게 미안할 정도로 친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숙달된 강사에 비해 교습생인 나의 운전 솜씨는 너무 엉성하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선생과 함께 먼 거리 운전 연습에 나섰습니다.

가는 도중에 변속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시동을 꺼뜨렸으며, 그때마다 주눅이 바짝 들어 어깨가 돌덩이처럼 굳었습니다.

   "아이구, 이 겁쟁이!"

  나는 권 선생에게 너무 미안한 나머지, 머리를 주먹으로 몇 번씩 쥐어박으며 스스로를 구박해 보았지만,

질병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날 결국 첫 번째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원평 소재지의 좁은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다가 그만 길가에 주차된 트럭의 아랫부분을 들이받은 것입니다.

받친 차는 흔적이 경미했는데, 내가 운전하던 차는 범퍼 왼쪽 부분이 심하게 쭈그러졌습니다.

트럭 운전자에게는 약간의 수리비로 해결되었지만, 권 선생한테는 너무 미안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권 선생의 차를 고치기 위해 적지 않은 수리비가 들어간 것은 차치하고라도,

면허를 취득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사고를 친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연습 과정을 거치고 내 차를 마련한 지 일주일 만에 또 사고를 치고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공사 중인 도로를 지나다가 어처구니없게도 내 차의 바퀴가 수신호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발등을 밟고 지나간 것입니다.

그 젊은이가 날쌔게 몸을 날려 수도관을 묻으려고 파놓았던 구덩이로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몸을 크게 상할 뻔 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싣고 가 사진을 찍어 봤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젊은이의 발등은 빨갛게 부어올랐을 뿐 크게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비록 가볍지만 초보가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창피하고 기가 죽어 다음 날부터는 핸들 잡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학교에서의 당직 근무 날에 세 번째 사고를 지질렀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홀가분한 기분으로 아파트 출구를 비교적 유연하게 빠져나왔습니다.

도로를 달리면서도 간간이 주변 경치도 살피고 어깨에 힘도 빼며 여유를 부렸습니다.

  학교 옆 마을에서 교문까지는 비록 100여 미터에 불과했지만,

차 한대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농로여서 초보운전자인 나로서는 출근길의 최대 난코스였습니다. 

그러나 마침 통행인이 없어 멈칫거리지 않고 거뜬하게  통과했습니다.

  며칠 전에 역시 운전 초보였던 선배교사가 이 교문을 통과하다

핸들을 잘못 꺾으면서 블록담장을 일부 무너뜨린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곳을 지나려니 흙손을 들고 어설픈 솜씨로 무너진 담장을 보수하던 선배교사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주차도 비교적 깔끔하게 마무리한 나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한 차례 으스댔습니다.

 

 운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 슬며시 운전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연습 삼아 차를 몰고 다시 교문 밖으로 나갔다가 비좁은 후문을 통해 아래 운동장의 나무 밑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별 탈 없이 제법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퇴근 무렵에 일어났습니다.

후문 밖으로 잘 빠져나왔다 싶었는데 순간 학교 담장을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5미터쯤 되는 담장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일부는 내 차의 범퍼 위로 쏟아졌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지만 보나마나 내 얼굴은 사색이 되었을 게 뻔합니다.

순전히 나의 핸들 조작 미숙 탓으로 또 사고를 친 것입니다.

  새마을 담장으로 불리던 이 담장은 오래 되어서 거의 폐기 상태였으나, 그 일부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손상된 차와 무너진 담장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으려니 참으로 황당했지만, 더 한심스런 것은 또 사고를 친 나였습니다.

나도 나지만 견인차에 끌려가는 차를 보고 있으려니, 임자를 잘못 만난 차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쨌든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사고를 친 나는,

불명예스럽게도 아내로부터 초보운전 사고뭉치 딱지를 받았으며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지금까지 무사고를 자랑하게 되었으니, 이는 아마 그 딱지의 대가인 듯 합니다.

이제 초보운전 사고뭉치 딱지를 떼어 반납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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