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의 섬, 울릉도에 가다.
‘교학우’는 전주교대를 졸업하던 해에 가까이 지내던 동창생 여덟 명이 모여 만든 계의 이름이자,
계원 개개인을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졸업하기 전 성탄절 전야에 변두리의 허름한 방 하나를 빌어 망년회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데,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정분을 쌓았으니 그냥 헤어지면 안 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동한 것이 교학우입니다.
교학우는 졸업식을 하던 날 오후부터 밤까지 시내의 주요 거리를 쏘다니며 자축회를 가졌습니다.
거리에서 사진도 찍고 술도 마시고 고성방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스물 두 살 내외의 혈기 왕성한 나이에 졸업이라는 자유의 의미가 어우러진 교학우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선생이 될 사람이라는 걸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마침과 해방감이 이날 하루 교학우를 점령해버린 셈이었습니다.
교학우는 3월부터 각 학교에 발령이 나기 시작하여 이름 뒤에 ‘선생’이라는 호칭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교원 수급 상황에 따라 발령의 빠르고 늦음은 있었습니다.
발령에 따라 교학우는 각자의 고향인 정읍, 남원, 임실, 진안, 완주 등 도내 각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발령이 나기 전에 입대한 교학우도 있고, 발령 후에 군에 가는 교학우도 생겼습니다.
발령이 난 후 첫 여름방학 때, 교학우는 울릉도 배낭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당시는 해상 교통이 아주 불편했을 뿐 아니라 특히 울릉도는 동해의 고도처럼 범접할 수 없는 섬처럼 여겨졌습니다.
더구나 오가는 중에 태풍이라도 만나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여행지로 택하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학우의 젊음과 호기심은 울릉도행을 감행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텐트를 비롯하여 간단한 조리 기구와 몇 가지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장도에 올랐습니다.
낯설은 객지 풍경이 볼만했던지라, 교학우는 몇 차례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탔지만
피로한 줄도 모른 채 흥겨움이 들떠있었습니다.
교학우는 해질 무렵에야 울릉도행 여객선이 출발하는 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대합실 주변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은 교학우는 드디어 유일한 울릉도행 여객선인 ‘청룡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열 두 시간의 바닷길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배를 처음 타본 교학우가 흥분에 들떠 배 안의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이에 청룡호는 벌써 내항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부두의 불빛이 보일 듯 말 듯 한 거리까지 달려온 여객선은 본격적으로 너른 동해 바다에 거대한 몸을 내맡겼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려는 듯 우릉우릉대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습니다.
바람과 파도는 쉬지 않고 심술을 부렸습니다. 파도는 뱃전을 할퀴고 부서지며 어둠 속에서 하얀 포말로 산화했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보이는 건 거친 파도와 잿빛 하늘뿐이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배는 더욱 요동을 치고, 멀미로 시달리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배도 외로움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더욱 몸부림쳤습니다.
난간에 기대어서니 부서진 파도의 잔해들이 짭짤한 내음을 풍기며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아스라이 먼 곳에 시가지의 불빛이 줄을 지어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것은 시가지가 아니고 오징어잡이 배들임을 알았습니다.
오징어잡이 배가 연출하는 전등불빛 퍼레이드는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분주히 오징어를 걷어올리는 어부들의 가뿐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싱싱한 몸을 파닥거리는 오징어들도 머리 속을 지나갔습니다.
객실로 내려와 사람들 틈에 끼어 잠시 눈을 붙인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도동항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열 두 시간의 대장정을 마친 교학우는 지친 몸을 이끌고 부두에 발을 디뎠습니다.
부두의 아침은 정박해있는 크고 작은 배들과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에 넘쳤습니다.
섬이라 이름이 붙은 땅을 처음 밟은 나는 정복감에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거기다 내가 살고 있는 정읍의 반대쪽 동해의 끝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과 감동이 한동안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울릉도에 대한 호기심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동해의 외로운 섬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넘쳤습니다.
그 곳의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에도 이국적인 신비로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교학우는 우선 마을 빈터에 텐트와 버너를 설치하고 아침 식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밥과 감자를 썰어 넣은 된장국에 멸치볶음이 전부였지만 섬에서 만들어 먹는 밥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관광객을 싣고 해안을 따라 섬을 일주하는 자그마한 통통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절벽은 갈매기들의 날갯짓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폭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병풍의 그림처럼, 섬은 새로운 장면을 연이어 펼쳐 보였습니다.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은 도보로 섬의 안쪽을 여기저기 들여다보며 사람 사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섬과 바다의 풍경을 만끽했습니다.
울릉도에서의 2박3일 동안의 여정을 마친 우리들은 갈 때의 바닷길을 따라 다시 포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교학우는 포항 송도 해수욕장 백사장에 여장을 풀고 하루 밤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별무늬가 박힌 하늘을 이불 삼고 은빛 백사장을 안방 삼아 잠을 청하니 이보다 넓고 아늑한 잠자리가 또 있을까?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송도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박차고 나온
교학우는 고향을 향한 열차에 지친 몸을 실었습니다.
나는 추억거리로 가득찬 보따리를 꼬옥 안은 채 의자에 몸을 묻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울릉도의 잔상이 하나하나 스쳐갔습니다. 옷깃은 바다 내음으로 젖은 채였습니다.
새로운 천지를 탐험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1968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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