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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신문칼럼

전북일보 '금요수필 란' 에 수필 게재

2016년 9월 23일자 전북일보 '금요수필 란'에 실린 자작 수필입니다.


지름길의 그림자

 

 

 

사람은 매일 유무형의 길을 가게 된다. 그 길이 제 길이든 지름길이든 매 순간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깝고 빠르다는 속성(屬性)을 지닌 지름길의 유혹을 떨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린 시절, 기회만 있으면 개구멍이나 샛길 통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등하교 때 제 길로 가지 않고 일부러 밭 가운데로 질러갔던 일도 떠오른다. 가까우니 편하고 그 쾌감 또한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지름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간혹 선생님이나 밭 주인한테 들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심리를 알고 있는 어른들은 그러려니 하며 크게 호통을 치지는 않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요즘처럼 경쟁을 조장하는 세태와는 달리, 순박함이 묻어있는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지름길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지름길을 찾아야 한다며 스스로 채근한다. 제 길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는 열등생 취급을 받기 일쑤다. 요즘 너나없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 하나는‘바쁘다’이다. 바쁘기로는 어린이들도 어른 못지않다. 방과 후에도 부모가 마련해준 경로를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어른들이 바쁘다는 것은 나름대로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어린이는 자신의 생각보다 부모의 의지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지름길로 눈이 가기 마련이다.

발달심리학자 피아제에 의하면, 아동은 일정한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 연령 경계와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어도 모든 개인은 같은 단계를 같은 순서로 거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각 단계는 이전 단계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한 그다음 단계의 기초가 된다. 잎이 자라고 꽃이 피면 이내 열매를 맺는 식물의 순차적 성장과 어린이들의 단계적 성장은 같은 이치이다. 어린이들은 성장 발달 단계상 기초를 탄탄히 다지며,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야 한다는 것이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교육의 과정에서 속성(速成)의 이면에는 기본의 소홀, 단계의 건너뛰기, 인성의 경시라는 속성(屬性)이 숨어있다. 속성(速成)으로 인해 허약해진 기본과 뒤틀린 인성이 언젠가는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지름길로 달려 남보다 앞서 목표에 이를 수도 있겠으나, 이를 잘못 관리하면 자칫 자만과 나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으로 망설이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초가 허약하고 단계를 건너뛰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른처럼 잘한다.’하여,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어린이의 성장이 때로는 터덕거리거나 모자라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당연한 현상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상을 되돌아보며 지름길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자상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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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근 / 수필가 문경근 씨는 전북문협과 정읍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으로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