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동토를 헤치고 피어나는 한송이 야생화의 생명력이 우리를 위로한다 |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길목에 서면, 마지막 달력 한 장에 눈이 머물게 됩니다. 그 위에 자신을 투영하며 지난 일들을 반추하다보면, 이런저런 상념에 젖기도 합니다. 12월은 누구에게나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달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단어들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한 해를 깔끔하게 보내주려는 듯 ‘송년’을 말하기도 하고, ‘망년’을 외치며 이런저런 일들을 가뿐하게 잊고자 합니다.
이렇듯 아쉬운 심정이 담긴 단어들이 애용되는 것은, 연말이면 내심 떨쳐버리고 싶은 일들이 적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보내거나 잊는다는 것은 하나의 희망사항이지, 현실은 바람처럼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들 말합니다.
12월에는 ‘매듭달’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순우리말이기도 하지만, 새겨볼수록 그 안엔 깊은 뜻이 담겨 있어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매듭’의 사전적 설명 속에는 ‘어떤 일과 일 사이의 마무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달 이름 앞에 매듭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의 사이에 일단 매듭 하나를 짓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매듭을 잘 지어야 모양새가 좋아 보이기 마련입니다.
▲ 문경근주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시간 위에 작은 매듭 하나를 짓는 것은 우선 여유로워 보여 좋습니다. 또한 매듭은 끝이 아니라 이어질 끈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의미는 배가됩니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하나를 찍는 셈입니다. 작지만 정성스런 매듭 하나를 짓는 것은, 매듭달 12월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이자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기도 합니다.
중국 푸단대학 교수였으며, 나이 서른셋에 요절한 위지안은 그의 저서에서 말했습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는 것이 훨씬 값지다.’ 삶에 쫓기는 사람들이 연말이면 한번쯤 새겨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12월은 성찰과 다짐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쯤 해서 숨을 고르지 않고 마냥 달리기만 한다면 남은 여정이 벅차고 지칠지도 모릅니다. 잠시 멈춰서 옆과 뒤를 살펴보는 일에 인색하다면, 소중한 사람들과 일들을 함께 잃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도 다사다난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해였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대선이라는 거대한 이슈가 전국을 지배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일들이 멈춤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도 함께 쌓여왔습니다. 이젠 한 매듭을 지으며, 작지만 소중한 일들에 귀를 기울이며 기본과 초심을 챙겨야 할 때입니다. 고백, 용서, 화해도 12월에 어울리는 한 매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지인으로부터 새 탁상용 달력과 수첩을 받았는데, 깔끔한 매듭과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었습니다. 달력 속의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며, 수첩의 낱장마다 사람냄새로 채워지기를 소망해봅니다.
2013년의 매듭달엔 이 달력과 수첩을 펼쳐보면서 지긋이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한 해 동안 제 작은 이야기들과 함께 해주신 ‘밝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새해를 기쁨과 소망으로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매듭달 끝자락에 -
|